
1884년 10월, 워싱턴에 25개국 대표가 모였습니다. 의제는 단 하나였습니다. 지구의 시간을 어디서부터 셀 것인가. 회의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선을 본초자오선으로 정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왜 하필 그리니치였을까요. 당시 세계 해운의 대부분이 이미 그리니치 기준의 해도를 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표준은 힘의 산물이었고, 표준을 쥔 나라가 세계의 시간을 정했습니다. 지도 위의 선 하나가 곧 권력의 지도였던 셈이지요.
그로부터 142년이 지난 2026년 7월, 상하이에서 또 다른 표준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번 의제는 시간이 아니라 지능입니다. AI를 누가, 어떤 규칙으로 다스릴 것인가.
7월 16일, 29개국이 세계AI협력기구(WAICO)의 창설협정에 서명했습니다. 본부는 상하이에 둡니다. 다음 날인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 세계AI대회(WAIC) 개막식 무대에 직접 올랐습니다. 2018년 시작된 이 행사에서 그가 기조연설에 나선 것은 처음입니다. 중국이 이 무대에 얼마나 무게를 싣고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독주가 아니라 교향곡 : 중국이 내민 초대장
시진핑의 문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AI 발전은 한 나라의 독주가 아니라 국제 협력의 교향곡이 되어야 한다." 그는 오픈소스와 개방, 공유를 장려하자고 했고, WAICO를 "세계 AI 발전사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글로벌 사우스의 요구에 답하는 조치"라고 규정했습니다.
수사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중국은 향후 5년간 개발도상국에 AI 훈련·세미나 기회 5,000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ASEAN, 아프리카연합, 아랍연맹, BRICS와는 국제 AI 응용협력센터를 세우겠다고 했지요. 창립 회원국의 면면을 보면 그림이 더 선명해집니다. 인도네시아, 브라질, 남아공, 세네갈,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대부분이 글로벌 사우스, 즉 미국 주도 기술 질서의 바깥에 서 있던 나라들입니다.
초대장의 내용은 분명합니다. 첨단 AI가 소수 강대국의 손에만 쥐어지는 세계가 아니라, 문턱을 낮춰 함께 나누는 세계로 가자는 것. 이것만 떼어놓고 보면 반박하기 어려운 명분입니다.
▸ 빗장을 지른 쪽과 문을 여는 쪽 : 개방이라는 이름의 전략
그렇지만 한 발 물러서 보면, 이 '개방'의 배경을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AI 수출통제에 첨단 칩 접근이 막혀 있는 쪽입니다. 봉쇄를 당한 나라가 오히려 개방과 오픈소스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사실. 저는 이 장면에서 1990년대 암호전쟁의 역설이 겹쳐 보였습니다. 무언가를 빗장으로 걸어 잠그려 할수록, 그 반대편은 '자유로운 공유'라는 더 매력적인 서사를 손에 쥐게 됩니다.
시진핑의 발언 중 가장 날이 선 대목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AI 분야에서 국가안보 개념을 과도하게 확장하거나, 한 나라의 안보를 다른 나라의 안보 위에 두는 것에 공동으로 반대하자"고 했습니다. 이름을 부르지 않았을 뿐, 수출통제를 겨눈 화살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여기서 다시 1884년의 그리니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표준은 언제나 중립을 표방하지만, 그 표준을 설계한 자의 궤도를 따라 세계가 돌아갑니다. WAICO의 '개방'이 진정한 다자주의인지, 아니면 데이터와 기술의 흐름을 중국에 유리하게 정렬하는 새로운 궤도인지는 지금 단정할 수 없습니다. 개방을 말하는 무대와 표준을 쥐려는 손이 같은 몸에 붙어 있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교향곡에는 눈에 띄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호주. 주요 서방 민주국가는 아무도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AI 거버넌스가 하나의 합주로 모이기는커녕, 두 개의 오케스트라로 갈라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한쪽은 공급망과 안보를 중심에 둔 미국과 동맹, 다른 한쪽은 접근과 오픈소스를 앞세운 중국과 글로벌 사우스.
▸ 한국은 어느 자리에 앉을 것인가
그렇다면 여러분, 한국은 이 두 오케스트라 중 어디에 앉게 될까요.
우리의 처지는 유독 미묘합니다. 반도체로는 미국의 통제 체제 안에 깊이 묶여 있고, 시장과 공급망으로는 중국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AI 표준을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남이 만든 표준을 받아 쓰는 자리에 서 있다는 점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버린 AI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됩니다. 자국어 모델과 자체 인프라를 갖추는 것을 넘어, 어느 진영의 규칙에도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연결층'을 확보하는 문제로 말입니다. 두 오케스트라가 각자의 악보를 고집할 때, 양쪽 무대에 모두 설 수 있는 연주자가 되는 것. 그것이 표준을 못 만드는 나라가 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자리일지 모릅니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닙니다.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어느 쪽으로부터도 온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1884년의 대표들은 시간의 기준선을 정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 그어진 선은 지금도 우리 손목시계 속에 살아 있습니다. 2026년 여름 상하이에서 그어지기 시작한 선은, 훗날 어떤 지도를 남기게 될까요. 그리고 그 지도 위에서 한국은 어느 경도에 서 있게 될까요.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그 자리에 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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