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를 위한 이야기 공장 AI 기술에 인문학의 온기를

2030년 AI 공장을 짓겠다고 합니다 : 그 전에 뽑은 사람은 데이터 엔지니어였습니다

2030년 AI 공장을 짓겠다고 합니다 : 그 전에 뽑은 사람은 데이터 엔지니어였습니다

회사가 지금 무엇에 막혀 있는지는 보도자료보다 인사 발표에 먼저 드러납니다. 새로 만든 자리와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의 직무를 보면, 그 회사가 스스로 인정한 부족한 부분이 그대로 보이거든요. 전략은 다듬어서 내놓을 수 있지만 사람을 뽑는 일은 그렇게 포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금요일 삼성전자가 AI 인재 두 명을 영입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명은 딥러닝과 비전 AI 분야의 권위자인 한보형 펠로우입니다.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를,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박사를 마친 뒤 포항공대 조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있었죠. 삼성에서 맡을 일은 반도체 연구개발에 특화된 AI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내 보도의 헤드라인은 대부분 이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함께 발표된 두 번째 인물이 제 눈에는 더 들어왔습니다. 한태린 상무인데요. 서울대 기계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하고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를 받은 뒤, 미국 페르소나에서 시니어 개발자로, 메타에서 엔지니어링 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삼성에서 맡은 임무는 AI 레디 데이터(AI Ready Data) 구축이라고 소개됐습니다. AI가 따로 가공하지 않고 바로 쓸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을 만드는 일이죠.

모델을 만들 사람과 데이터를 만들 사람을 같은 날 임원급으로 나란히 앉힌 셈입니다. 그리고 반도체 공장에서는 두 번째가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 표준은 1980년대부터 있었습니다 : 그런데 아직 말을 하지 않는 설비가 있습니다

반도체 장비가 공장 시스템과 주고받는 대화에는 오래된 표준이 있습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관리하는 규격인데요. 장비가 주고받을 메시지의 내용을 정의한 것이 SECS-II(SEMI E5)로, 1980년대부터 항목이 쌓여 왔습니다. 그 메시지를 어떤 장비에나 똑같이 적용할 수 있도록 범용 장비 모델을 얹은 것이 1990년대에 나온 GEM(SEMI E30)이고요. 나중에는 이 통신을 TCP/IP 위에 올리는 규격(SEMI E37)까지 더해졌습니다. 설비가 지금 무슨 상태이고 방금 무슨 일을 했는지를 사람이 옆에 서 있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하려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었습니다.

문제는 표준이 있다는 것과 모든 설비가 그 표준으로 말한다는 것이 전혀 다른 얘기라는 데 있습니다. 오래된 장비는 아직도 RS-232 직렬 케이블로 붙어 있는 경우가 흔하고, 표준 통신을 아예 지원하지 않는 설비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그런 장비에서 데이터를 걷어 내려고 별도의 수집 장치를 따로 달아 둡니다. 업계에서 부르는 이름이 Non-SECS Box인데, 이름 자체가 상황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죠. 표준을 쓰지 않는 설비가 아직 있다는 뜻이니까요.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있는 NXP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 출입 구역입니다. 방진복을 갖춰 입어야 들어갈 수 있는 이 문 안쪽에 도입 시기가 제각각인 설비들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있는 NXP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 출입 구역입니다. 방진복을 갖춰 입어야 들어갈 수 있는 이 문 안쪽에 도입 시기가 제각각인 설비들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출처: Flickr / International Transport Forum*

그러니 팹에 데이터가 없어서 AI를 못 쓰는 것이 아닙니다. 데이터는 수십 년치가 쌓여 있습니다. 다만 같은 항목이 라인마다 다른 이름과 다른 단위, 다른 기록 주기로 남아 있고, 어떤 설비는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모델은 그런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현업에서 데이터 분석 과제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요. 실제로 시간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구간은 모델을 고르는 자리가 아니라, 흩어진 기록을 같은 모양으로 맞추는 자리입니다.) 삼성이 데이터 엔지니어링 담당을 따로 임원으로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 2030년 자율 팹 : 지금 성과가 나온 자리는 유지보수와 결함 분석입니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국내외 생산 공장을 AI 자율 공장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습니다. 평택 공장은 이미 엔비디아의 Omniverse를 기반으로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겨 둔 상태고요. 최근에는 AI 전환을 맡던 조직을 AX/PI 센터로 격상해 전사 업무 개선과 AI 표준화를 함께 맡겼습니다. 표준화라는 단어가 조직 이름에 들어간 것 역시 앞서 말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SK하이닉스가 내건 목표도 같은 해입니다. 지난 3월 엔비디아 GTC의 제조업 관련 패널에서 도승용 부사장(DT 부문장)이 2030년까지 자율형 팹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그 자리에서 공개한 성과 수치가 구체적입니다. 설비 유지보수와 결함 분석에 걸리던 처리 시간을 기존 대비 50% 이상 줄였고, 부품 재고는 약 30% 절감했다고 했습니다. "품질과 비용, 생산 속도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의사결정이 매우 정교해졌다"는 것이 당시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과가 나온 자리를 다시 보시면 좋겠습니다. 설비 유지보수와 결함 분석입니다. 둘 다 데이터가 비교적 잘 정리돼 있고 무엇이 정답인지가 분명한 구간이죠. 고장은 났거나 나지 않았고, 불량은 있거나 없습니다. AI가 공정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상황에 맞춰 고쳐 나가는 단계와는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좁고 확실한 구간에서 먼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이고, 그것이 부족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2030년이라는 목표 연도와 지금 숫자가 나온 구간 사이의 거리는 한 번 재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어떤 모델을 쓸 것인가 다음에 오는 질문

이건 반도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회사든 AI를 도입하겠다고 하면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이 어떤 모델을 쓸 것인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프로젝트를 멈춰 세우는 것은 대개 그다음 질문이죠. 그 모델에 넣을 데이터가 지금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남아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모델을 골라도 첫 달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삼성이 같은 날 두 사람을 함께 발표한 것은 그 순서를 이미 겪어 봤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국내 업계에서는 이번 영입을 두고 인력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 전반에 전문성을 퍼뜨리는 것이 목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데이터를 정리하는 일은 원래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니 그 말이 맞을 것입니다.

AI 공장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죠. 그 전에 우리 회사의 설비와 시스템이 지금 어떤 형태로 기록을 남기고 있는지부터 확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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