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년, 미국의 렌터카 회사 에이비스(Avis)는 업계 2위였습니다. 1위 허츠(Hertz)와의 격차는 상당했고, 광고 대행사 도일 데인 번벅(DDB)에 일을 맡겼을 때 그쪽에서 가져온 문안은 광고주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종류였습니다.
"에이비스는 렌터카 업계에서 2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이용하십니까?"
그리고 그 아래에 답이 붙었습니다. "2위일 때는 더 열심히 하게 되니까요(We try harder)."
광고의 기본 문법은 자기가 1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2등이라고 먼저 선언하는 것은 항복처럼 보이지요. 그런데 이 문안은 1위의 이름을 자기 광고 안으로 끌어들여 소비자에게 자기 좌표를 한 문장으로 이해시켰고, 그 다음 문장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했습니다. 광고사에 남은 캠페인이 된 이유입니다.
저는 이 문장 구조를 2026년의 AI 모델 발표문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제, 2026년 8월 3일 알리바바가 플래그십 모델 Qwen3.8-Max를 전 세계에 정식 개방했습니다. Alibaba Cloud Model Studio의 API와 업무 에이전트 플랫폼 QwenWork를 통해 광범위 제공으로 전환한 것이지요. 7월 중순에 개발자 도구 쪽에 프리뷰로 먼저 얼굴을 내밀었고, 어제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총 2.4조 파라미터의 MoE(Mixture of Experts) 구조이고, 컨텍스트는 약 100만 토큰, 텍스트와 이미지와 영상을 함께 받습니다. 토큰당 실제로 계산에 참여하는 활성 파라미터를 950억 개로 보도한 매체가 있지만, 알리바바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수치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모델을 처음 예고한 7월 중순, Qwen 공식 계정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와 있는 가장 강력한 모델 중 하나이며, Fable 5 다음이다." 영어 원문의 표현이 "second only to Fable 5"였습니다. Anthropic이 6월 9일에 내놓은 최상위 모델을 1위로 지목하고, 자기 자리를 그 바로 아래로 못 박은 것입니다.
▸ 은메달을 스스로 목에 거는 기술 : 2등 선언의 세 가지 계산
기술 회사가 자기 순위를 스스로 낮춰 부르는 데는 계산이 있습니다.
첫째, 좌표를 한 문장으로 전달합니다. 새 모델을 설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벤치마크 표 열 개가 아니라 "누구 다음"이라는 한 마디입니다. 상대의 권위를 잠시 빌려서 자기 위치를 즉시 이해시키는 방식이지요.
둘째, 검증 부담을 덜어냅니다. 1등이라고 주장하면 그날 저녁부터 반증이 올라옵니다. 2등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관대해집니다. 실제로 7월 프리뷰 당시 이 주장에는 벤치마크 표도 모델 카드도 함께 나오지 않았다는 지적이 여러 매체에서 나왔지만, 큰 논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겸허해 보이는 문장은 반박의 표적이 되지 않습니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핵심인데, 진짜 메시지는 다른 줄에 적혀 있습니다. 에이비스의 진짜 메시지가 순위가 아니라 그 다음 문장이었던 것처럼요.
▸ 진짜 본문은 가격표입니다 : 출력 6달러 대 50달러
알리바바가 어제 공개한 가격은 100만 토큰당 입력 2달러, 출력 6달러입니다. 캐시된 입력은 0.25달러이고요.
자기가 1위로 지목한 Claude Fable 5의 가격은 100만 토큰당 입력 10달러, 출력 50달러입니다. 출력 기준으로 8분의 1 남짓, 입력 기준으로 5분의 1입니다. 같은 구간의 다른 모델과 견줘도 낮습니다. Kimi K3가 3달러/15달러, OpenAI의 범용 등급 GPT-5.6 Terra가 2달러/12달러이니까요.
발표문을 다시 읽으면 문장은 이렇게 번역됩니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런데 1등 값의 8분의 1입니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알리바바는 Qwen3.8-Max와 소형 모델 Qwen3.8-27B의 가중치를 다음 주, 8월 10일이 있는 주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직 공개된 것은 아니고 라이선스 종류도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고대로 성사된다면 알리바바가 최상위 Max 등급의 가중치를 여는 첫 사례가 됩니다. 그동안 Qwen이 열어온 것은 한 단계 아래 등급이었고, 2조 파라미터를 넘는 오픈웨이트로는 지난주 Kimi K3에 이어 두 번째가 됩니다.
저는 이 예고가 가격표보다 더 무거운 문장이라고 봅니다. 2등이 무료가 되면, 1등의 가격표는 무엇을 근거로 유지될까요. 성능 격차가 근거라면 그 격차를 매달 갱신해 증명해야 하고, 증명이 어려워지는 순간 남는 근거는 성능이 아닌 다른 것들입니다. 보증, 계약, 감사 이력, 규제 통과 기록 같은 것이요. 어제 홍콩 증시에서 알리바바 주가가 약 6% 오르고 뉴욕 ADR이 4.5% 오른 것은 성능 표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이 구도에 대한 반응으로 보입니다.
물론 2.4조 개의 숫자를 내려받아 실제로 깨울 수 있는 곳은 여전히 한정돼 있습니다. 그 문턱 이야기는 지난주에 했으니 여기서는 접겠습니다.
▸ 그렇지만 : 아직은 남의 집 자랑입니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짚어야 할 것이 여럿 남습니다.
먼저 어제 공개된 성적표는 전부 알리바바 자체 보고입니다. 독립 검증이 아닙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자체 보고 표 안에서도 자칭 2등의 근거가 항목마다 흔들립니다. Terminal Bench 2.1에서 Qwen3.8-Max는 86.6으로 GPT-5.6 Sol의 88.8에 못 미치지만, 각 84.6인 Fable 5와 Opus 4.8은 앞섭니다. IFBench에서는 82.8로 Sol의 72.7을 크게 앞서고요. 그런데 SWE-bench Pro에서는 67.7인데 Fable 5가 80.0입니다. 자기가 만든 표 안에서도 어떤 항목은 2등이고 어떤 항목은 한참 뒤입니다.
측정 자체의 불안정성도 있습니다. 같은 모델을 같은 벤치마크로 측정해도, 어떤 하네스로 돌렸는지에 따라 점수가 몇 점씩 움직입니다. Kimi K3의 Terminal-Bench 2.1 점수가 문샷 자체 보고로는 88.3인데 독립 측정 기관 집계에서는 85 수준으로 나오는 것이 그 예입니다. 86.6과 88.3을 나란히 놓고 우열을 따지는 비교 자체가 그 오차 폭 안에 들어 있는 셈이지요. 초기 독립 집계의 결과도 아직 엇갈립니다.
기업 도입 쪽에는 다른 종류의 계산이 붙습니다. QwenWork를 업무 워크플로에 넣는 결정은 모델을 고르는 결정이 아니라 그 모델이 놓인 법률 환경까지 함께 들이는 결정입니다. 중국 국내법 노출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어제 발표 직후부터 나온 이유입니다.
배경의 공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7월 20일 보도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AI 모델 사용 제한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다음 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중국 오픈소스 모델의 지식재산 침해를 연방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이 중국 오픈웨이트를 어떻게 다룰지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최상위 등급이 또 풀리려는 중입니다.
▸ 688B, 750B, 그리고 2.4T : 우리가 겨룰 판은 어디인가
이 소식을 한국의 자리에서 읽으면 날짜가 아프게 붙습니다.
7월 29일 SK텔레콤이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A.X K2를 공개했습니다. 688B, 직전 K1의 519B에서 올라온 규모이고 허깅페이스에 올렸습니다. 국내외 14개 벤치마크 평균이 전작 대비 32.2%p 올랐습니다. 이틀 뒤인 7월 31일에는 LG AI연구원이 K-EXAONE 2.0을 내놓았습니다. 국내 최대인 750B이고, 라이선스를 상업 이용이 가능한 아파치 2.0으로 바꿨습니다. 24개 평가지표 평균이 70.1점으로 1차수의 63.3점에서 올랐고요.
그리고 사흘 뒤 알리바바가 2.4조를 다음 주에 풀겠다고 말했습니다. 파라미터로 세 배가 넘는 차이입니다.
여기서 성급한 낙담으로 가면 판을 잘못 읽습니다. 파라미터 수는 성능이 아닙니다. 게다가 A.X K2와 K-EXAONE 2.0이 겨냥한 자리는 애초에 프런티어 1위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어, 산업 현장의 적용, 데이터가 어디에 남는지의 문제였지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독자 모델들을 8월 중 오픈소스로 전면 공개할 방침이고, 그 자리에서 증명해야 할 것도 세계 순위표의 등수가 아닙니다.
다만 에이비스의 문안을 다시 꺼내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 광고가 성공한 이유는 2등이라고 말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2등이라고 말한 다음에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한다"는 문장을 이어 붙였기 때문입니다. 알리바바가 이어 붙인 문장은 가격표와 가중치 공개 예고였습니다. 우리 발표문에는 규모 다음에 어떤 문장이 붙어 있습니까.
세계 10위권을 목표로 한다는 말은 순위표의 언어입니다. 순위표는 상대가 두 달에 한 번 갈아치우고, 그 사이 우리 등수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내려갑니다. 등수 대신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델을 골라야 하는 이유가 규모나 등수가 아닌 다른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8월의 공개는 발표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2등이라고 먼저 말하는 것은 겸양이 아니라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몇 등이라고 말할 것이며, 그 다음 문장에 무엇을 적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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