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신분증을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고도 손님의 나이를 꽤 잘 알아맞히는 사람들이 있죠. 오래 장사한 가게 주인들이 그렇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주문하는지, 말투가 어떤지, 일행이 몇 명인지를 보고 짐작합니다. 대개는 맞고 가끔은 틀립니다. 틀렸을 때 손님은 기분이 상하고, 주인은 그제야 신분증을 보자고 하죠.
이번에 OpenAI가 내놓은 물건이 정확히 이 방식입니다.
현지 시각 8월 18일 화요일, OpenAI가 13세에서 17세 이용자를 위한 별도 경험인 ChatGPT for Teens를 공개했습니다. 전 세계 배포가 이미 시작됐고, EU는 지역 요건을 반영하느라 몇 주 뒤에 적용된다고 합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가입 절차가 없다는 점인데요. OpenAI의 청소년·가족 총괄인 로렌 조나스는 청소년이 새 계정을 만들거나 무언가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스스로 13~17세라고 밝힌 계정, 그리고 OpenAI의 나이 예측 시스템이 18세 미만으로 추정한 계정이 자동으로 이 경험에 들어갑니다.
무엇을 막기로 했는지를 보면 이 발표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자살과 자해, 노골적인 폭력, 바이럴 챌린지, 극단적인 미용·다이어트를 부추기는 내용은 예상 범위 안에 있죠. 그런데 목록에서 제 눈에 걸린 것은 그쪽이 아니었습니다.
연애 감정을 담은 말투를 쓰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친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감정이나 의식이 있는 것처럼 암시하지 않습니다. 정서적 의존을 부추기지 않고, 이것이 AI 도구라는 사실을 자주 알립니다.
이것은 콘텐츠 규제가 아닙니다. 관계에 대한 규제죠. OpenAI의 아동발달 총괄인 앨리슨 미시킨은 청소년이 이것과 관계를 맺게 만들 수 있는 가상의 신호들을 추려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은 모델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모델이 사용자와 어떤 사이가 되느냐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업계가 가장 공을 들여 만든 것이 바로 그 다정함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묘한 대목입니다. 사람처럼 말하고, 맞장구를 치고, 기억해 주고, 어제 하던 얘기를 이어 가는 능력 말이죠. 그것이 제품의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같은 회사가 특정 연령대에서는 그 다정함을 꺼야 할 기능으로 분류했습니다.
▸ 막기로 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사이였습니다
근거가 없는 판단은 아닙니다. 커먼센스미디어(Common Sense Media)가 2025년 4~5월에 미국 청소년 1,060명을 조사한 결과가 있는데요. 72%가 AI 동반자 서비스를 한 번이라도 써 봤고, 52%는 한 달에 몇 번 이상 쓰는 정기 이용자였습니다. 셋 중 한 명가량은 AI와의 대화가 사람과의 대화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고 답했고, 33%는 중요하거나 심각한 문제를 사람 대신 AI에게 털어놨다고 했습니다. 12%는 친구나 가족에게 하지 못할 이야기를 AI에게 한다고 답했고요.
그리고 OpenAI는 지금 열여섯 살 아이의 죽음을 두고 유족이 제기한 부당사망 소송의 피고입니다. 지난해 8월에 제기됐고, 회사는 책임을 부인했으며, 재판은 진행 중입니다. 이번 발표가 진공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 확인하지 않고 짐작합니다 : 틀렸을 때 신분증을 내는 쪽은 어른입니다
그런데 저를 더 오래 붙잡은 것은 두 번째 장치였습니다. 나이 예측(age prediction)입니다.
OpenAI는 이용자의 나이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추정합니다. 회사가 밝힌 판단 재료를 보면 계정을 만든 지 얼마나 됐는지, 본인이 밝힌 나이가 무엇인지 정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평소 어떤 주제로 대화하는지, 하루 중 몇 시에 접속하는지, 계정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까지 들어갑니다. 그것을 모아 18세 위인지 아래인지를 가늠하는 것이죠. 그리고 이 시스템이 실제로 얼마나 정확한지, 회사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판단이 애매할 때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밝혀 뒀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거나 정보가 부족하면 18세 미만 쪽으로 놓습니다. 안전한 쪽에 기본값을 두는 것이죠. 그리고 잘못 분류된 성인에게는 되돌릴 길을 열어 놨습니다. 신원 확인 업체인 페르소나(Persona)를 통해 나이를 증명하면 원래 기능이 돌아오고, 나라나 상황에 따라서는 신분증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적어 뒀습니다. OpenAI는 이것이 성인에게 프라이버시를 내주게 하는 거래라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감수할 만한 거래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구조를 한번 뒤집어 보면 이렇게 됩니다. 나이를 묻지 않겠다고 시작한 설계가 결국 신분증을 내는 사람을 만들어 냅니다. 다만 그 신분증을 내는 쪽이 청소년이 아니라, 미성년으로 잘못 분류된 어른입니다. 확인에 드는 비용을 전체에서 고르게 걷지 않고, 분류기가 틀린 사람에게만 청구하는 방식이죠. 정확도를 공개하지 않은 시스템에서 이 청구서가 얼마나 자주 날아가는지는 바깥에서 알 방법이 없습니다.
▸ 한국은 이 길을 반대편 끝에서 걸어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는 이 문제가 특히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반대 방향에서 이미 걸어 봤거든요.
2007년에 도입된 제한적 본인확인제, 흔히 인터넷 실명제라고 부르던 제도가 그것입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이트에 글을 쓰려면 먼저 본인임을 확인받아야 했습니다. 나이를 알려면 신원을 알아야 하고, 신원을 알려면 주민등록번호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죠. 이 제도는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을 받았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데 비해 불법 게시물이 줄어드는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고, 국내 사업자만 규제를 떠안는 역차별이 생겼으며, 이용자들은 규제가 닿지 않는 해외 사이트로 옮겨 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게임 셧다운제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습니다. 2011년 11월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은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 게임에 접속할 수 없었죠. 그러려면 접속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시스템이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 제도는 2022년 1월 1일에 폐지되고 게임시간 선택제로 일원화됐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두 제도의 공통점은 나이를 기준으로 무언가를 막으려면 먼저 전 국민의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한국은 그 길을 끝까지 가 본 뒤 되돌아 나온 나라입니다. 그런데 OpenAI는 같은 목적지에 반대편 길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전원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는 대신 전원을 추측하고, 추측이 틀렸다고 항의하는 사람에게만 신분증을 요구합니다. 겉보기에는 훨씬 가벼운 방식인데요. 대신 모든 이용자가 상시로 분류 대상이 된다는 조건이 함께 붙습니다.
▸ 공개되지 않은 숫자들
물론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전 세계 이용자에게 신분증부터 받는 쪽이 더 나은 선택일 리 없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은 이미 법정에서 답이 나오고 있고요. OpenAI가 기본값을 안전한 쪽에 두고, 그것이 성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거래라는 사실을 문서에 그대로 적어 둔 것은 오히려 정직한 태도라고 봅니다.
다만 정직하게 적어 뒀다는 것과 바깥에서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이번 발표에서 끝내 숫자가 나오지 않은 항목이 셋 있습니다. 나이 예측이 실제 미성년 이용자를 얼마나 걸러내는지, 청소년 경험에 들어간 뒤 그것을 우회하는 이용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자해나 섭식장애 신호가 감지됐을 때 보호자에게 알림이 가기까지 목표로 내건 한 시간이 실제로 지켜지는지입니다. 세 가지 모두 회사만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나이를 기계가 대화 방식으로 짐작하는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는 목적 자체에는 이견을 내기 어렵겠죠. 다만 그 목적을 위해 모든 이용자를 상시로 분류하는 구조가 함께 따라온다는 점, 그리고 그 분류가 얼마나 자주 틀리는지를 물어볼 통로가 아직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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