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5년, IBM 704를 쓰던 미국의 사용자들이 SHARE라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목적은 소박했습니다. 각자 짜놓은 프로그램을 서로 복사해 쓰자는 것이었지요. 당시 IBM은 소프트웨어를 따로 팔지 않았습니다. 기계값에 끼워 주었고, 소스코드도 함께 건넸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오픈소스입니다.
그런데 그 시절 누구도 IBM의 개방을 두고 "이제 컴퓨팅이 만인의 것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코드는 공짜였지만, 그 코드를 돌릴 기계는 IBM에서만 빌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9년 IBM이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에서 떼어내 따로 값을 매기기로 결정하면서 비로소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는 것이 태어났는데, 그 전까지 개방과 종속은 아무런 모순 없이 한 몸으로 붙어 있었습니다.
개방을 판정하는 기준은 언제나 두 개였습니다. 볼 수 있는가, 그리고 돌릴 수 있는가. 우리는 꽤 오랫동안 첫 번째 질문만 붙들고 살아왔지요.
오늘 아침 9시, 그 두 번째 질문이 아주 큰 규모로 되돌아왔습니다.
한국시간 오늘 오전 9시(협정세계시 0시), 중국의 문샷 AI(Moonshot AI)가 Kimi K3의 가중치를 Hugging Face에 공개했습니다. 총 2.8조 파라미터의 MoE(Mixture of Experts) 모델로, 지금까지 공개된 오픈웨이트 가운데 가장 큽니다. API는 이미 7월 16일에 먼저 열려 있었고, 오늘 열린 것은 모델 파일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사흘 사이, 워싱턴에서는 중국산 AI 모델의 사용을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NVIDIA가 호스팅한 오픈웨이트 옹호 공개서한에는 하루 만에 50개 회사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 1.4테라바이트라는 문턱 : 내려받기는 만인에게, 실행은 자본에게
먼저 물건 자체를 보겠습니다. K3는 896개의 전문가 가운데 토큰당 16개만 깨우는 구조로, 실제로 계산에 참여하는 파라미터는 약 500억 개입니다. 컨텍스트는 100만 토큰이고, 도구 호출과 브라우징, 다단계 계획 같은 에이전트 기능이 처음부터 모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성적표도 만만치 않습니다. Artificial Analysis의 종합 지능 지수에서 57점으로 189개 모델 중 4위에 올랐고, 개발자 블라인드 평가인 프런트엔드 코드 부문에서는 1,679점으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 SWE Marathon과 Program Bench에서도 1위입니다. 종합 성능에서 최상위 폐쇄형 모델을 앞섰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코딩과 에이전트 영역의 여러 지표에서는 이미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가격은 100만 토큰당 입력 3달러, 출력 15달러. 비교 대상들의 절반에서 3분의 1 수준이지요.
여기까지가 "오픈웨이트는 싸지만 한 세대 뒤처진 대안"이라는 오래된 전제가 무너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입니다.
이 모델을 내려받아 직접 돌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4비트로 압축한 상태에서도 가중치 용량이 약 1.4테라바이트입니다. 최신 가속기 한 장으로는 어림도 없고, 여러 대의 서버를 묶어 합산 메모리 1.4테라바이트 이상을 확보해야 합니다. 공개된 권장 구성은 가속기 64개 이상을 하나로 묶은 슈퍼노드입니다.
2.8조라는 숫자는 성능의 지표이면서, 동시에 문턱의 높이입니다. 다운로드 링크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파일을 실제로 깨워 말을 시킬 수 있는 주체는, 데이터센터 한 구획을 잡을 수 있는 곳으로 한정됩니다. 1955년 SHARE 회원들이 프로그램 테이프를 자유롭게 주고받으면서도 IBM에서 기계를 빌려야 했던 것과, 구조가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 개방을 가장 크게 외친 곳이, 그 문을 여는 기계를 파는 회사라는 것
지난 한 주 워싱턴의 공기는 정반대 방향이었습니다. 7월 20일 보도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사이버보안을 근거로 중국산 AI 모델 사용 제한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다음 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중국 오픈소스 모델의 지식재산 침해 여부를 연방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검토되는 수단은 전면 금지보다는 보안 권고, 조달 규정, 사용 기업에 책임을 지우는 행정명령 쪽입니다. 아직 확정된 정책은 없고, 프런티어 AI에 관한 백악관의 정책 틀은 8월 1일 이전에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단계입니다.
산업계의 반응은 빨랐습니다. 7월 24일, NVIDIA가 호스팅한 '오픈웨이트와 미국의 AI 리더십' 공개서한에 25개 기업과 단체가 서명했습니다. Microsoft, Meta, IBM, Dell, Palantir, Mistral, Mozilla, 리눅스 재단, Hugging Face, a16z, Y Combinator가 첫 명단에 있었지요. 요지는 내려받을 수 있는 모델 가중치를 국가의 전략 인프라로 취급하라는 것, 그리고 성급한 규제를 자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명단은 하루 만에 50개로 늘었고, 처음에 빠져 있던 Google과 OpenAI도 뒤늦게 합류했습니다. 젠슨 황은 생애 첫 X 게시물로 이 서한을 공유하면서 1980년대의 오픈소스 논쟁을 직접 끌어왔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술 기업들이 자국 정부의 규제 방향에 집단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장면입니다. 흔한 광경은 아니지요.
그런데 저는 이 서한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정직하게 병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개방을 가장 크게 옹호한 주체가, 그 개방된 모델을 돌리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기계를 파는 회사라는 점입니다. 오픈웨이트가 늘어날수록 추론용 가속기 수요는 늘어납니다. 1.4테라바이트짜리 모델이 세상에 풀릴 때 가장 확실하게 이득을 보는 쪽은, 그것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쪽이니까요.
서한의 논리가 틀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중치 파일에 국경을 세우기 어렵다는 지적도, 개방이 보안 연구와 기술 주권의 토대라는 주장도 그 자체로 충분히 타당합니다. 다만 명분과 이해관계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우리는 그 둘을 구분해 읽을 의무가 있습니다. 서한에서 유독 오픈웨이트와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는 '증류' 관련 문단이 하나 끼어 있다는 지적도 나왔는데, 이 논쟁의 진짜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지요.
명단의 빈자리도 눈에 띕니다. 7월 25일에서 26일 사이의 집계 기준으로, Amazon과 Anthropic은 끝내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두 회사가 이유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아닙니다. 다만 Anthropic이 지난 2월 중국 모델 개발사들을 산업 규모의 증류 문제로 공개 거론했던 것을 떠올리면, 안전을 앞세우는 담론과 개방을 앞세우는 담론이 같은 진영 안에서 갈라서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 그렇다고 문턱이 영원히 높은 것은 아닙니다
한 발 물러서 보면, 반대편의 이야기도 공정하게 들어야 합니다.
가중치가 공개되면 그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일이 있습니다. 더 거칠게 압축하고, 잘라내고, 작은 모델로 증류하는 커뮤니티의 작업입니다. Llama 계열이 그랬고, 그 앞의 여러 오픈 모델이 그랬습니다. 오늘 슈퍼노드에서만 도는 모델의 파생 버전이 반년쯤 뒤 워크스테이션에서 도는 시나리오는, 과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반복돼온 패턴에 가깝습니다.
리눅스도 처음에는 서버룸의 물건이었습니다. 개방이 곧바로 평등을 만들지는 않았지요. 다만 개방은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닫힌 모델의 문턱은 회사가 정하지만, 열린 모델의 문턱은 커뮤니티가 깎아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1.4테라바이트를 '개방의 실패'로 읽는 것은 성급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개방은 완료된 상태가 아니라, 문턱이 내려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빠른지는 나라마다, 조직마다 다릅니다.
▸ 8월의 한국 : 공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개방이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과 함께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세계가 "오픈웨이트를 막을 수 있는가"를 두고 논쟁하는 바로 이 달에, 한국은 국가 예산으로 만든 모델을 여는 달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해온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이른바 국가대표 AI는 8월 중 Hugging Face 등을 통해 오픈소스로 공개될 계획입니다. 2027년까지 약 5,300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이지요. 세금으로 만든 모델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는 분명 옳습니다.
다만 오늘의 K3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조금 더 까다롭습니다. 공개는 시작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가중치를 올려놓았다는 사실만으로 개방이 완성된다면, 그것은 개방이 아니라 홍보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물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그 모델을 돌릴 국가 단위 컴퓨팅 자원에 중소기업과 연구실이 접근할 수 있는가. 큰 모델과 함께 양자화 배포판, 소형 파생 모델이 같은 날 나오는가. 파인튜닝과 배포를 감당할 문서와 도구가 붙어 있는가.
미국은 지금 "열어도 되는가"를 놓고 다투고 있고, 중국은 "열어버렸다"로 답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닙니다. 누가 돌릴 수 있게 할 것인가. 이것이 설계에 들어가 있지 않다면, 우리의 개방은 1960년대 IBM의 개방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남게 됩니다. 소스는 모두에게, 기계는 소수에게.
여러분, 문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문의 폭이 아니라 문턱의 높이입니다. 오늘 아침 Hugging Face에 올라온 2.8조 개의 숫자는 분명 인류 모두의 것입니다. 그것을 깨울 전기와 기계를 가진 사람에게만, 실제로 인류 모두의 것입니다.
8월에 우리 앞에 놓일 문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그 답은 모델을 공개하는 날이 아니라, 공개된 다음 날부터 드러날 것입니다.
전체 사이트에서 댓글·관련 글을 함께 보시려면
이야기 공장에서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