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인은 종종 두려움의 목록입니다. 사람이든 회사든, 아니라고 말할 때 무엇과 비교당하기 싫은지가 먼저 새어 나오지요.
지난해 11월, 엔비디아가 월가 애널리스트들에게 돌린 일곱 장짜리 메모에는 25년 전에 무너진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루슨트와 달리, 엔비디아는 매출을 키우기 위해 공급자 금융(vendor financing)에 의존하지 않는다." 엔비디아를 엔론과 루슨트에 빗댄 뉴스레터 한 편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비판자들이 먼저 꺼낸 이름을, 엔비디아가 정면으로 받아 적은 문장이었지요. 그때는 그저 반박으로 읽혔습니다.
그리고 2026년 7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이 특종을 냈습니다. Bloomberg가 같은 날, CNBC와 Axios가 다음 날 뒤따라 확인했습니다. 엔비디아가 오픈AI의 오하이오주 파이크턴 데이터센터 임차·건설 부채에 약 2,500억 달러 규모의 금융 보증(backstop)을 서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내용입니다. 이 보증에 칩 값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칩 구매 자금 조달은 별도로 최대 3,500억 달러까지 논의되고 있다고 하니, 합치면 최대 6,000억 달러 규모의 노출이 되는 셈입니다.
왜 보증이 필요할까요. 오픈AI가 아직 흑자가 아니어서 투자적격(investment grade) 신용등급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채권시장이 단독으로는 이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요. 그 자리에 엔비디아가 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못을 박아두겠습니다. 이것은 체결이 아니라 협의입니다. 조건은 정해지지 않았고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여덟 달 전에는 일곱 장짜리 메모로 조목조목 반박했던 엔비디아가 이번에는 논평을 거부했고, 오픈AI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증은 지출이 아니라 우발채무입니다. 오픈AI가 갚으면 엔비디아에서 나가는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 1999년의 이름 : 팔기 위해 돈을 빌려주던 회사
루슨트는 벨연구소의 계보를 이은 통신장비 최강자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 미국에는 신생 통신사업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장비 살 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루슨트는 답을 찾았습니다. 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자사 장비를 사게 했지요.
2000 회계연도 말 기준 루슨트가 약정한 공급자 금융 한도는 약 81억 달러, 당시 매출 336억 달러의 약 24%에 달했습니다. 노텔이 31억 달러, 시스코가 24억 달러로 뒤를 따랐습니다. 1998년 10월에는 신생 사업자 윈스타(Winstar)에 20억 달러 규모 금융을 제공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이라고 홍보했습니다.
2001년 4월, 윈스타가 파산했습니다. 루슨트에 남긴 채무만 약 7억 달러였습니다. 루슨트의 부실채권 비율은 2000년 말 2.6%에서 2001년 말 60%로 뛰었습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글로벌 통신주 시가총액 2조 달러 이상이 증발했고, 신생 사업자 40여 곳이 파산하거나 시장을 떠났습니다.
공급자 금융의 진짜 문제는 부정직함이 아닙니다. 회계적 착시입니다. 내가 빌려준 돈이 내 매출로 돌아오면, 그 매출이 시장의 수요인지 내 자금의 반사인지 구분할 방법이 사라집니다. 루슨트의 재무제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을 뿐이지요.
▸ 그렇지만 엔비디아는 루슨트가 아닙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갈라놓아야 합니다. 유추는 도구이지 판결이 아니니까요.
첫째, 루슨트는 자기 사업도 흔들리던 회사였습니다. 엔비디아는 압도적 흑자 기업입니다. 둘째, 2001년 신생 통신사들은 깔아놓은 설비에 견줘 매출이 턱없이 작았고,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오픈AI는 대규모 영업손실을 내고 있지만 월 20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1999년의 광섬유는 깔아놓고 쓰지 않은 재고였지만 2026년의 컴퓨트는 지금 모자랍니다. 지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상황이 아니라 줄을 세워놓고 못 대주는 상황이지요.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은 반응했습니다. 7월 27일 엔비디아 주가는 장중 5% 넘게 떨어져 2026년 2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200달러 선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더 눈여겨볼 것은 채권 쪽입니다. 엔비디아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장중 약 0.14%포인트 올라 0.82%포인트 부근에 닿았습니다. 이 계약이 활발히 거래되기 시작한 이래 최대 장중 상승폭입니다. 채권시장이 엔비디아를 칩 회사가 아니라 신용을 제공하는 회사로 다시 매기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미 지난주에 엔비디아 숏을 늘려둔 마이클 버리는 "우리는 돌고 또 돕니다. 엔비디아가 ChatGPT의 엔비디아 칩 지출 2,000억 달러를 보증한다"고 적었습니다. 그가 쓴 숫자는 2,000억 달러이지만 보도상 수치는 2,500억 달러입니다. 짐 채노스는 "엔비디아가 자기가 파는 칩 값의 3분의 2가량에 금융 보증을 서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지난해 그 메모가 돌 때, 루슨트와의 비교가 타당하다고 편을 들었던 사람이 바로 채노스였습니다. 메모가 밀어내려 했던 이름이 여덟 달 만에 되돌아온 셈입니다.
▸ 광섬유는 30년을 갔습니다, GPU는 몇 년일까요
통신 버블의 교훈이 파산만은 아닙니다. 그때 과잉 포설된 광섬유 대부분은 불이 켜지지 않은 채 남았고 투자자는 전멸했지만, 그 인프라는 10년 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토대가 됐습니다. 과잉투자는 자산을 남기고 투자자를 죽입니다.
문제는 남는 것의 종류입니다. 광섬유는 30년을 갔습니다. GPU의 경제적 수명은 아직 논쟁 중입니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6년으로 잡아 상각하고, 공매도 쪽은 2~3년이라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 맞든 30년과는 자릿수가 다릅니다. 거품이 꺼졌을 때 손에 쥐는 것이 "아직 쓸 수 있는 자산"이냐 "감가상각이 끝난 고철"이냐가 여기서 갈립니다.
다만 데이터센터가 GPU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파이크턴 캠퍼스는 냉전기 우라늄 농축 시설이던 포츠머스 가스확산공장 부지 위에 올라갑니다. 2001년 가동을 멈춘 연방 토지 3,700에이커가 다시 전략 자산이 되는 셈이지요. SB Energy가 개발을 맡고, 10기가와트 규모에 자체 천연가스 발전 9.2기가와트를 붙여 기존 전력망 의존을 줄입니다. 1단계 800메가와트 가동 목표는 2028년 초, 전체 완공 기준 5,000억 달러 이상입니다. 부지와 전력, 송전은 GPU보다 오래 갑니다.
배치를 보면 그림이 선명해집니다. 국가가 땅을 대고, 소프트뱅크 계열이 전기를 대고, 엔비디아가 신용을 대고, 오픈AI가 이름을 댑니다. 그러면 위험은 누가 지는 것일까요.
▸ 주문서의 끝단에 선 한국
이 이야기가 남의 나라 금융 뉴스가 아닌 이유가 있습니다. 불과 사흘 전인 7월 25일, SK그룹과 엔비디아가 5,0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포괄적 파트너십 의향서(LOI)에 서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SK텔레콤은 2기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를 세워 2027년 1단계 가동을 목표로 하고, SK하이닉스는 차세대 AI 메모리와 HBM4 공동개발·장기 공급을 맡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6월 젠슨 황 방한 때 확인됐듯 같은 사슬 위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 우리 메모리의 주문서는 공급망의 문제였습니다. 잘 만들고 제때 대면 되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최종 수요자가 칩 공급자의 보증에 기대어 돈을 빌리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그 주문서는 신용 사슬의 끝단에 놓이게 됩니다. HBM4의 수요는 오픈AI의 자금 조달 능력에, 그 조달 능력은 엔비디아의 재무제표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술력으로 지킬 수 있는 자리와 남의 대차대조표에 얹힌 자리는 다릅니다.
저는 이것이 버블이라고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무엇을 지켜볼지는 정할 수 있습니다. 보증이 실제로 체결되는지와 그 조건이 무엇인지, CDS 프리미엄이 계속 벌어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추론 수요가 실제로 이 설비를 채우는 속도로 늘어나는지. 이 세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보증은 수요를 만들지 못합니다. 시간을 벌 뿐입니다. 엔비디아가 그 이름을 부인문에 적어 넣어야 했던 것은, 그 이름이 이미 방 안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기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하나뿐이지요. 그렇게 번 시간 안에 진짜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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