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화요일, 마누스(Manus)를 쓰는 분들의 화면에 안내가 하나 떴습니다. 데이터를 백업하라는 공지였는데요. 서버를 옮긴다거나 서비스를 접는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8월 23일 오전 8시 59분(한국시간)까지 받아 두지 않으면 그 이후 작업 기록이 지워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로 적힌 문장은 이랬습니다. 메타와의 분리 과정에 해당하며, 특정 지역의 규제 요건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라고요.
수출통제니 기술패권이니 하는 말은 대개 헤드라인에 머물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정부 사이의 결정이 개인 사용자의 화면에, 마감 시각이 분 단위로 적힌 안내창으로 도착했습니다. (실은 이것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누스는 2022년 중국에서 시작한 회사입니다. 모회사 이름은 버터플라이 이펙트(Butterfly Effect)이고, 창업자는 샤오훙과 지이차오, 장타오 세 사람이죠. 지난해 3월 초대장 방식으로 공개된 범용 AI 에이전트가 바로 마누스인데요. 목표만 던져 주면 알아서 웹을 뒤지고 문서를 만들고 코드를 돌려 결과를 가져오는 물건이라, 공개 직후부터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그다음에 회사가 한 일이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지난해 5월 미국 벤처캐피털 벤치마크(Benchmark)가 주도한 7,500만 달러 투자를 받은 뒤, 마누스는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습니다. 운영 법인을 Butterfly Effect Pte로 바꾸고, 중국에 있던 120명 넘는 인력 가운데 40명 안팎의 핵심 인원만 싱가포르로 데려갔죠. 그리고 그해 12월 29일, 메타가 약 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 8천억 원가량에 이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계약에는 중국 지분이 남지 않는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깔끔합니다. 등기는 싱가포르에 있고, 사람도 싱가포르에 있고, 주인은 미국 회사입니다.
▸ 등기는 옮겼는데 관할이 따라왔습니다
첫 신호는 지난 3월에 왔습니다. 마누스 직원 100명가량이 메타의 싱가포르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던 무렵, 중국 당국이 CEO인 샤오훙과 수석과학자인 지이차오를 베이징으로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이후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출국이 금지됐다고 보도됐죠. 인수 이후 두 사람 모두 메타의 임원 직함을 갖고 있었고, 샤오훙은 메타의 COO인 하비에르 올리반에게 직접 보고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4월 27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결정을 내놨습니다. 외국인투자 안보심사를 근거로 이 인수를 금지하고 양측에 거래를 철회하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발표문에는 법령에 따라 마누스 프로젝트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문장만 있었고, 구체적인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메타 대변인은 이 거래가 관련 법을 완전히 준수했으며 적절한 해결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이 2021년 외국인투자 안보심사 제도를 시행한 이래, 이미 종결된 국경 간 인수를 되돌리라고 명령한 사례가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법률가들은 이 사건을 '싱가포르 워싱(Singapore washing)'에 대한 제동으로 읽었습니다. 등기와 인력을 옮겨 중국 회사라는 꼬리표를 떼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죠. 이번 결정이 말한 바는 간단합니다. 기술과 사람의 출발점이 중국이면 등기 주소가 어디에 있든 베이징의 관할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 돈은 되돌아갔고 여덟 달은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숫자를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달 초 블룸버그와 닛케이 등이 전한 바로는, 텐센트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메타의 지분을 되사는 협상이 진행됐습니다. 마누스에 처음 투자했던 젠펀드(ZhenFund)와 HSG 같은 중국계 투자자들도 다시 합류했고요. 그리고 그 가격이 처음 인수 가격과 같은 약 20억 달러였습니다. 지난 12일 차이신은 텐센트가 마누스의 최대 후원자로 올라섰다고 보도했는데요. 다만 텐센트도 단일 최대주주일 뿐 과반을 쥔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해집니다.
금액만 놓고 보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거래처럼 보입니다. 메타는 20억 달러를 냈다가 20억 달러를 돌려받았으니 금전적으로는 손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거래에서 되돌릴 수 있었던 것과 되돌릴 수 없었던 것이 갈립니다. 돈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기술과 사람도 원래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사이 여덟 달 동안 쌓인 것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창업자 두 사람이 출국 금지 상태로 보낸 시간, 싱가포르로 옮겨 갔다가 다시 정리된 조직, 그리고 사용자들이 그동안 만든 작업 기록입니다.
마누스가 지우겠다고 밝힌 데이터가 정확히 그 구간입니다. 인수가 종결된 2025년 12월 29일 이후에 데이터를 만든 사용자가 대상이고, 그 이전부터 쓰던 계정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한국시간으로 8월 23일 오전 9시부터 24일까지 삭제가 진행되고, 25일 오전 9시부터 백업해 둔 데이터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백업 기간 동안 해당 사용자에게 과금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응 자체는 성실한 편입니다. 다만 지워지는 이유가 서비스 쪽 사정이 아니라는 점은 그대로 남습니다.
▸ 우리에게도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목록이 다를 뿐입니다
한국에도 같은 결의 제도가 있습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외국인이 인수할 때 정부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는데요. 지분을 50% 이상 가져가는 경우는 물론이고, 50%에 못 미쳐도 최대주주가 되면서 임원 선임에 지배적 영향력을 갖게 되면 대상이 됩니다. 최근 개정으로 승인 결과를 통보받기 전까지는 인수 행위를 할 수 없게 됐고, 위법한 인수에는 중지나 원상회복 명령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조문만 놓고 보면 이번에 베이징이 꺼낸 카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목록입니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항목의 중심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입니다. 만드는 물건이 분명하고 공정을 특정할 수 있는 분야죠. 그런데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회사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요? 가중치 파일과 학습 파이프라인, 그리고 그것을 만들 줄 아는 사람 수십 명입니다. 이런 회사가 저 목록의 어디에 걸리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법인을 옮기는 일, 이른바 플립도 한국에서 이미 관행입니다. 미국 기관투자자에게 시리즈 A 이상을 받으려면 델라웨어 법인 구조를 요구받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싱가포르 법인도 흔한 선택지죠. 한국 법인이 미국 법인의 자회사로 내려가는 형태가 되는데, 이 자체는 합법이고 널리 쓰입니다. 마누스가 한 일도 형식만 놓고 보면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2027년까지 5,300억 원 규모를 투입하는 국가대표 AI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참여 기업들이 만든 모델은 공개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업이 몇 년 뒤 해외 자본에 팔린다면 어떤 조건이 붙는지, 이미 공개한 가중치와 아직 공개하지 않은 학습 데이터·파이프라인이 각각 어떻게 취급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지 않습니다. AI 회사를 인수한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가져가는 일인지 앞으로도 계속 얘기가 나오겠죠. 그 목록에 무엇을 적어 둘지, 그리고 그 결정의 결과가 누구의 화면에 안내창으로 뜨게 될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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