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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고른 적 없는 기본값에 값이 붙었습니다 : 허깅페이스 130억 달러

아무도 고른 적 없는 기본값에 값이 붙었습니다 : 허깅페이스 130억 달러

모델을 내려받아 돌려 보신 적이 있다면 이런 코드를 쓰셨을 것입니다. `AutoModel.from_pretrained("google/gemma-3-27b-it")`. 이 한 줄을 다시 보시면 좀 이상한 점이 있는데요. 주소가 없습니다. http도 없고, 도메인 이름도 없고, 포트도 없습니다. 슬래시 하나로 나뉜 문자열 하나뿐이죠.

그런데 실행하면 어디선가 수십 기가바이트가 내려옵니다. huggingface.co입니다. 우리가 그 주소를 적어 넣은 적은 없습니다. 라이브러리 안에 기본값으로 들어 있으니까요. (`HF_ENDPOINT`를 바꿔 사내 미러를 붙여 보신 분들은 그 기본값이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아실 겁니다.)

현지 시각 8월 23일 일요일, 그 기본값에 가격표가 붙었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먼저 보도하고 이튿날 여러 매체가 확인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허깅페이스(Hugging Face)가 기업가치 130억 달러(약 18조 원) 이상으로 회사 매각을 타진하고 있고, 인수 후보들의 관심을 가늠하려고 투자은행을 선임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초기 단계이고, 인수자는 특정되지 않았고, 거래가 성사된 것도 아닙니다. 2023년 8월 시리즈 D를 마쳤을 때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45억 달러(약 6조 원)였으니 3년 만에 세 배 가까운 숫자가 거론되는 셈이죠.

▸ 실적에 붙은 값이 아니라 위치에 붙은 값입니다

이 숫자를 실적으로 설명해 보려고 하면 금방 막힙니다. 허깅페이스의 연 매출은 1억 달러(약 1,4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회사는 흑자에 가까워졌다고 말합니다. 2023년에 받은 투자금도 최근에야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투자금을 빠르게 소진하며 버티는 회사는 아닌데요. 그래도 매출의 100배가 넘는 값입니다. 실적을 사겠다는 가격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러면 무엇에 붙은 값일까요? 저는 아까 그 코드 한 줄이 답이라고 봅니다. 이 회사가 가진 것은 300만 개에 가까운 모델 저장소가 아니라, 그 모델을 가리키는 문자열이 어디로 해석되는지에 대한 결정권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팀의 학습 스크립트와 CI 파이프라인과 Dockerfile 안에, 아무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기본값으로 그 주소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기본값은 검토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강력하죠.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누군가 그 기본값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힘을 잃습니다.

▸ 스위스라는 이름은 스스로 붙일 수 없습니다

허깅페이스의 공동창업자 겸 CEO인 클레망 들랑그는 2023년 시리즈 D를 마치면서 자기 회사를 "중립 플랫폼", 즉 AI 세계의 스위스라고 불렀습니다.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주주로 들인 곳이 라운드를 주도한 세일즈포스 벤처스를 비롯해 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인텔, IBM, 퀄컴, AMD였는데요. 서로 이해가 갈리는 여덟 곳을 한 명단에 섞어 놓으면 그중 누구도 이 회사를 자기 쪽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중립을 말로 선언한 게 아니라 지분 구조로 설계한 것이었죠.

2025년 말에는 더 분명한 선택을 했습니다. 엔비디아가 기업가치 70억 달러(약 10조 원)를 매기며 5억 달러(약 7,000억 원)를 넣겠다고 했는데 이를 거절했어요. 창업 이후 조달한 총액보다 큰 금액이었습니다. 이유로 밝힌 것은 지배적인 단일 투자자가 회사의 의사결정을 좌우하게 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30억 달러를 낼 수 있는 곳의 명단을 적어 보면 2023년의 그 주주 명단과 상당히 겹칩니다. 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쪽이 곧 그 값의 근거를 지우는 쪽인 셈입니다. 스위스라는 비유를 조금 더 밀어 보면 이 구조가 더 선명해지는데요. 스위스의 영세중립은 스위스가 스스로 선언해서 성립한 것이 아닙니다. 1815년 빈 회의에서 다른 나라들이 그 지위를 인정해 주면서 성립했습니다. 중립은 자기가 붙이는 이름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해 주는 지위입니다.

오스트리아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빈 회의 최종 문서입니다. 스위스의 영세중립은 이 회의에서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 주면서 성립했습니다.
오스트리아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빈 회의 최종 문서입니다. 스위스의 영세중립은 이 회의에서 다른 나라들이 인정해 주면서 성립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러니 이 거래에서 사라지는 것은 지분이 아니라 그 인정입니다. 구글이 소유한 허브에 메타가 자기 최신 가중치를 가장 먼저 올릴 이유가 약해지고, 특정 연구소가 소유한 허브에서 경쟁 연구소의 모델을 받아 쓰는 일이 예전만큼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겠죠. 소유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소유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값의 근거가 얇아집니다.

물론 그렇다고 매각을 검토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창업 10년, 매출 1억 달러, 흑자 근접. 팔 만한 회사가 되었다는 뜻이고, 팔지 않고 버티는 선택 역시 언제까지나 공짜는 아닙니다. 들랑그 본인도 지난 7월 한 팟캐스트에서 "단기 이익이나 조달 규모 극대화보다 회사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에 최적화한다"고 말했는데요. 지속가능성을 이유로 독립을 지킨 것도 그였고, 같은 이유로 매각을 검토하는 것도 그입니다. 모순이 아니라 같은 문제의 양면이라고 봅니다.

▸ 우리가 고른 적 없는 의존성입니다

한국 이야기를 짚고 마무리하겠습니다. 국내에서 나온 오픈웨이트 모델들도 결국 이 허브에 올라갑니다. 국가 예산이 들어간 모델도, 대기업이 공개한 모델도, 받아 쓰는 경로는 대부분 같은 곳이죠. 소버린 AI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보통 모델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이야기하는데요. 정작 그 모델이 어느 서버를 거쳐 손에 들어오는지는 아무도 고른 적이 없습니다.

예전에 스트라이프가 오픈라우터를 사들인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는데요. 그때와 같은 형태입니다. 모델을 만드는 층이 아니라 모델에 닿는 층에 값이 매겨지고 주인이 바뀌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 뉴스를 읽고 할 일은 인수자를 추측하는 쪽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파이프라인에서 그 기본값을 실제로 바꿔 끼울 수 있는지, 지금 쓰는 가중치의 사본을 우리가 들고 있는지, 그 허브가 하루 멈추면 무엇이 멈추는지를 확인해 보는 쪽입니다.

인수자가 누가 될지, 아니면 결국 팔지 않기로 할지는 아직 모르겠죠. 다만 어느 쪽으로 정해지든, 코드에 적히지 않은 주소가 우리 시스템 안에 몇 개나 더 들어앉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고민이 필요합니다.

#허깅페이스 #오픈웨이트 #기본값 #인수합병 #중립성 #소버린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