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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의 표준이 문명을 세웠듯 : Global AI OS 담론과 거버넌스의 첫 페이지

전기의 표준이 문명을 세웠듯 : Global AI OS 담론과 거버넌스의 첫 페이지

1880년대의 뉴욕은 서로 다른 전기의 전쟁터였습니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직류(DC)를 고집했고,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와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는 교류(AC)를 밀었습니다. 두 진영의 싸움은 치열했습니다. 에디슨은 교류의 위험성을 홍보하기 위해 공개 장소에서 코끼리를 감전사시키는 시연을 하기도 했지요. 한 기술이 다른 기술을 죽이려고 하던, 말 그대로 피 튀기는 표준 전쟁이었습니다.

결국 교류가 승리했습니다. 장거리 송전에 유리했고, 변압이 쉬웠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승리가 뜻한 것은 단순히 '교류 방식이 이겼다'가 아니었습니다. 세계의 전력망이 한 종류의 프로토콜 위에 올라타게 되었다는 것이 더 큰 의미였습니다. 100V든 220V든, 60Hz든 50Hz든, 서로 다른 세부 규격은 있어도 교류라는 공통 언어를 쓰는 거대한 인프라가 깔렸습니다. 그 위에서 20세기의 모든 문명 — 공장, 가전, 전화, 컴퓨터, 인터넷 — 이 자라났지요.

2026년 1월, AI 업계에서 비슷한 담론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Global AI Operating System'이라는 표현이 여러 매체와 정책 논의의 중심에 떠올랐는데요. 기술 용어로 보면 어색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 표현이 지금 시점의 상황을 정확히 포착한다고 생각합니다. AI의 '운영체제'는 CPU를 돌리는 윈도우즈나 리눅스가 아니라, AI를 세계에서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합의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 'Global AI OS'가 뜻하는 세 겹의 층

이 담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OS'를 세 겹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층은 기술 프로토콜 층입니다. 2024년 말의 MCPModel Context Protocol, 2025년의 A2AAgent-to-Agent 프로토콜, 그리고 2025년 12월 출범한 AAIFAgentic AI Foundation까지가 이 층을 구성합니다. AI 에이전트들이 어떤 공통 규약으로 서로 대화할 것인가, 어떤 포맷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것인가 같은 문제들이 여기에 속하지요. 앞서 한 해 동안 이 층은 꽤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왔습니다.

두 번째 층은 안전·신뢰 층입니다. 어떤 모델이 안전한지 검증하는 기준, AI가 만들어낸 콘텐츠에 대한 출처 표시, 편향과 차별을 줄이는 방법, 프라이버시 보호의 기본 원칙 같은 것들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EU가 2024년부터 시행한 AI ActAI 법안과 각국의 관련 법제, 그리고 ISO와 NIST 같은 국제 표준화 기구들의 가이드라인이 이 층의 뼈대를 이룹니다.

!지구본 위로 대륙을 가로지르며 몇 개의 허브에서 교차하는 빛의 네트워크 라인

세 번째 층, 그리고 가장 어려운 층이 정치·경제 합의 층입니다. AI의 수출 통제, 데이터 주권, AI로 인한 일자리 변화에 대한 국제적 협력, 반도체와 에너지 자원의 배분 같은 주제들이지요. 이 층은 여전히 합의가 되지 않은 영역이 대부분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경쟁, 유럽의 독자 노선,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라 불리는 개발도상국들의 목소리가 각자의 테이블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2026년의 3대 결정

2026년 1월의 담론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올해 안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세 가지 글로벌 수준의 결정입니다.

첫째, AI 안전성 검증의 국제 표준화 움직임입니다. 지금까지는 영국 AI 안전 연구소(UK AI) Safety Institute, 미국 NIST, EU의 AI Act 이행기구가 각자의 방법으로 프론티어 모델을 평가해왔습니다. 이 기준들을 조율해서 한 가지 국제 레퍼런스를 만들 것인지가 올 한 해의 큰 과제입니다. 성공한다면 AI 업계의 ISO 9001 같은 것이 태어나는 셈이지요.

둘째, 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처리 원칙입니다. 2023년부터 뉴욕타임스 소송을 비롯해 수십 건의 저작권 분쟁이 제기되어 왔고, 각국의 법원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려왔습니다. 이 혼선을 정리하는 다자간 협약이 WIPO(세계지식재산기구) 수준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콘텐츠 제작자들의 보상 체계가 만들어질 것인지, 아니면 '공정 이용'의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가 관건이지요.

셋째, 고성능 AI 칩의 수출 통제 규범입니다. 이것은 가장 정치적인 주제입니다. 미국이 주도해 온 엔비디아(NVIDIA H100) 계열의 수출 규제가 2025년 한 해 동안 더 강화되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 — 이를테면 중국의 자립형 AI 생태계 가속화 — 도 분명해졌습니다. 이 규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올해의 지정학 테이블에서 주요 의제로 올라올 것으로 보입니다.

▸ 한국은 어느 테이블에 앉아 있는가

여기서 저는 한국 독자들께 직접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결정의 테이블에 한국은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 걸까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한국은 이들 결정에서 관찰자(observer) 내지 동조자(follower)의 위치에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AI 안전성 검증 분야에서 한국의 AI 안전 연구소는 2024년 말에 설립되어 아직 국제 논의에서 발언권이 크지 않습니다. 저작권 처리에서도 한국의 저작권법은 AI 학습 데이터에 대한 명료한 입장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요. 칩 수출 통제에서 한국은 삼성과 SK 하이닉스(SK Hynix)가 메모리 반도체 공급자로서 사건의 한가운데 있지만, 규범을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 규범의 영향을 받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것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1990년대 초 인터넷 표준이 만들어질 때도 한국은 표준을 만드는 자리에 없었지요. 하지만 그 표준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응용의 깊이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모바일 결제, 이커머스 생태계 같은 영역에서 한국은 표준 채택 속도로 앞서 나갔습니다. AI OS 시대에도 비슷한 전략이 가능합니다.

!오래된 전기 스위치 박스와 그 옆에 정돈된 도면, 표준과 규약을 상징하는 정물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1990년대의 인터넷은 표준 자체가 기술적 중립성을 띤 프로토콜이었습니다. HTTP와 TCP/IP는 국가나 기업의 이해관계가 깊이 박힌 표준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2026년의 AI OS는 다릅니다. 데이터 주권, 안전 기준, 수출 통제 같은 주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이고, 테이블에 앉지 못한 나라는 결정된 규칙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다시 1880년대의 뉴욕으로 돌아가 봅시다. 전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전기 시대의 진짜 도전은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주파수를 쓸 것인가, 어느 전압을 쓸 것인가, 플러그는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같은 세부 합의가 나라마다 다르게 정해졌지요.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해외여행 때 어댑터를 챙겨야 합니다. 이 불일치는 거대한 낭비이지만, 동시에 각국의 산업 구조와 안전 기준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표준이 정해지는 시점에 어느 나라가 어느 테이블에 앉아 어떤 주장을 폈는지에 따라, 이후 100년의 인프라가 갈라졌습니다. AI OS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2026년에 만들어지는 합의는 2030년대와 2040년대의 AI 인프라를 결정하고, 그 위에서 한국 기업이 얼마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지도 지금 결정됩니다.

▸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

저는 이 시점에 한국이 해야 할 일이 세 가지라고 봅니다. 첫째, 국제 표준 논의에 적극 참여할 전문 인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영어로 백서를 쓰고 해외 학회와 정책 포럼에서 발언할 수 있는 AI 정책 전문가, 즉 기술·법·외교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들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둘째, 우리 자신의 입장을 명료히 정리하는 일입니다. 저작권·안전 검증·수출 규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정부와 업계 사이에 합의되어 있지 않으면, 국제 테이블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셋째, 우리와 입장이 비슷한 중견국들과의 연대입니다. 일본·독일·프랑스·네덜란드·싱가포르·호주·대만처럼 AI의 의미 있는 기여자인 나라들과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미국도 중국도 아닌 세 번째 축이 있어야, 규칙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습니다.

기술의 역사는 늘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기술이 아니라 합의가 문명을 만든다고요. 2026년에 쓰이는 Global AI OS의 첫 페이지에, 한국의 이름이 어떻게 새겨질 것인지. 저는 그 답이 올 한 해 동안 내려질 결정들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속한 조직은, 그 페이지에 어떤 문장을 보태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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