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토의 어느 작은 카이세키懷石 식당에는 고정된 메뉴판이 없다고 합니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주인이 잠깐 그 사람의 표정을 살피고 짧은 대화를 나눕니다. 계절이 어디쯤 왔는지, 오늘의 재료가 어떤지, 손님의 기분이 가벼운지 묵직한지. 그 짧은 탐색이 끝나면 그제서야 그날 그 손님만을 위한 코스가 즉석에서 쓰여집니다. 같은 식당에 같은 날 온 두 손님의 코스가 서로 다를 수 있고, 같은 손님이 다른 날 오면 또 다른 코스가 나옵니다.
대부분의 식당은 이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메뉴판은 인쇄되어 있고, 손님은 그중 하나를 고릅니다. 대량 생산의 경제학이 그 편이 합리적이라고 오래도록 말해 왔지요. 그런데 2025년의 AI 세계가 이 오래된 교토의 풍경을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2025년 11월 18일, 구글이 제미나이(Gemini) 3를 공개했습니다. LMArena에서 1501 Elo로 당시 1위를 되찾았고, Humanity's Last Exam에서 37.5%(도구 없이), GPQA Diamond에서 91.9%를 기록했다는 숫자가 공개 다음 날부터 각종 언론을 덮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숫자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변화가 이번 발표 안에 있다고 봅니다. 구글이 함께 공개한 Generative UI, 번역하자면 '생성 UI'라는 개념입니다.
▸ LMArena 1501 Elo라는 성적표
먼저 벤치마크의 이야기부터 간단히 정리해봅니다. LMArena는 사용자가 두 모델의 답을 비교해 승자를 고르는 방식의 비교 리그입니다. 1501 Elo라는 수치는 이 리그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는 의미이고, 이는 구글이 2023년 제미나이를 처음 공개한 이래 처음으로 동률이 아닌 단독 1위를 되찾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Humanity's Last Exam 37.5%와 GPQA Diamond 91.9%는 각각 난이도가 극히 높은 대학원급 문제 세트의 정답률인데, 이 자리에서 숫자의 의미를 길게 풀지는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숫자들이 매달 바뀐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달에 다른 모델이 이 자리를 탈환할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지난 2년간 우리가 본 풍경이 그랬지요. 1위가 6개월 이상 같은 회사에 머문 경우는 드물었고, 리그의 선두가 바뀌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1501이라는 숫자를 보며 "구글의 승리"라 선언하기보다, 저는 그 승리의 성격을 들여다보는 편이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구글이 들고 온 것은 단순히 점수 높은 모델이 아니라, 모델이 답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 Generative UI : 메뉴 대신 식당이 다시 태어난다
생성 UI는 이런 개념입니다. 여러분이 질문을 하면, 제미나이 3가 텍스트 답변만 내놓는 것이 아니라 답변에 적합한 인터랙티브 도구를 즉석에서 만들어 함께 내놓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택 담보 대출 월 상환액을 계산하고 싶어요"라고 물으면, 과거의 챗봇은 "월 상환액은 다음 공식으로 계산됩니다. P × r / (1-(1+r)^-n)…"같은 식으로 긴 설명을 내놓았을 것입니다. 제미나이 3는 그 답변과 함께 즉석에서 슬라이더 세 개가 달린 계산기 위젯을 만들어 보여줍니다. 원금·금리·기간을 움직이면 실시간으로 숫자가 변합니다. 혹은 "이 회사의 최근 5년 매출 추이를 보여줘"라고 하면, 표 하나를 텍스트로 던져주는 대신 인터랙티브 차트가 대화 안에 나타납니다. 마우스를 올리면 연도별 숫자가 뜨고, 축 단위를 바꾸거나 특정 구간을 드래그해 확대할 수 있습니다.
인터페이스가 미리 설계된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 질문을 위해 생성되어 나타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교토의 식당처럼 메뉴판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손님을 보고 코스를 즉석에서 쓰는 방식입니다.
!홀로그래픽으로 공중에 떠오른 반투명 차트와 버튼, 슬라이더들
▸ 20년간 지배한 'UI의 법칙'이 흔들린다
이 변화가 왜 중요한가. 지난 20년간 소프트웨어 산업을 지배해 온 암묵적인 전제가 있었습니다. "사용자는 먼저 만들어진 UI를 선택한다"는 전제입니다. 웹사이트를 기획할 때 우리는 사용자의 페르소나를 상상하고, 그들이 어떤 메뉴를 찾을지 예측하고, 그 예측에 맞게 버튼을 배치합니다. 사용자는 기획자가 예상한 길을 따라가거나, 예상을 빗겨나갔을 때는 대개 답을 찾지 못하고 화면을 떠납니다.
UX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이 전제 위에 서 있었습니다. 예상되는 사용자 행동 경로를 잘 설계하는 사람이 가장 귀하게 대접받았지요. 그런데 생성 UI는 이 전제를 흔듭니다. 사용자의 질문을 받은 순간에 그 사용자에게 필요한 UI가 조립되어 나온다면, 미리 모든 길을 깔아 둘 필요가 없어집니다. 아니, 미리 깔아 둔 길이 오히려 제약이 됩니다.
물론 이것이 하루아침에 모든 UX 디자이너를 대체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저는, 이 변화가 UX 디자이너의 역할을 더 중요하게 만들 것이라 봅니다. 다만 그 역할이 '화면을 그리는 일'에서 '생성되는 인터페이스의 규칙과 한계선을 설계하는 일'로 이동하겠지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종류의 위젯이 만들어져야 하는가, 접근성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개인정보를 건드리는 인터랙션에는 어떤 제약을 둘 것인가. 이런 상위 메타 설계가 새로운 전장이 될 것입니다.
▸ 가격표가 말하는 또 다른 이야기
제미나이 3의 API 가격은 입력 100만 토큰당 2달러, 출력 100만 토큰당 12달러로 책정되었습니다. 이 가격표는 겉보기에는 단순한 숫자지만, 그 뒤에는 구글의 오래된 전략이 흐르고 있습니다.
!가변 빛살로 그려지는 인터페이스 조각들과 가운데 떠 있는 방정식 창
구글은 예전부터 가격을 '시장 점유율의 도구'로 써 왔습니다. 지메일을 1GB 저장공간으로 출시하던 2004년 4월 1일의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당시 경쟁사들의 이메일이 수 메가바이트 단위였으니, 그날의 발표는 만우절 농담으로 오해받을 정도였지요. 구글은 가격(정확히는 용량)의 절대치로 업계를 재설정했습니다. 20년이 흐른 지금, 제미나이 3의 API 가격은 최상위 모델치고 꽤 공격적인 편입니다. 구글이 성능뿐 아니라 가격에서도 경쟁을 다시 꺼내들겠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가격이 떨어질수록 생성 UI 같은 '토큰을 많이 쓰는' 기능이 현실화됩니다. 왜냐하면 사용자의 질문마다 인터페이스를 즉석에서 생성하려면, 텍스트 답변만 내놓을 때보다 훨씬 많은 토큰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가격 하락과 생성 UI는 맞물린 톱니바퀴 같은 관계입니다.
▸ 한국의 개발 조직이 마주할 세 가지 질문
이 변화가 한국의 개발 조직에 떨어뜨리는 숙제는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저는 세 가지 질문이 앞에 있다고 봅니다.
첫째, "우리가 만드는 앱의 UI 중 어디까지를 고정할 것인가." 모든 화면을 생성 UI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보험 가입 같은 법적 책임이 따르는 화면은 여전히 엄격하게 설계된 고정 UI가 필요합니다. 반면 고객 문의 응대나 데이터 탐색 같은 탐색형 업무는 생성 UI가 훨씬 유리합니다. 이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가 제품 경쟁력을 가르는 지점이 됩니다.
둘째, "생성 UI 시대의 디자인 시스템은 어떻게 생겼는가." 지금까지의 디자인 시스템(구글 머티리얼, 애플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 등)은 컴포넌트의 카탈로그였습니다. 앞으로는 이 카탈로그 위에 어떤 상황에 어떤 컴포넌트가 생성되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메타 규칙층이 올라가야 합니다. 이 규칙층을 잘 만든 조직이 자기 브랜드를 지키면서도 생성 UI의 이점을 취할 수 있습니다.
셋째, "생성된 UI의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모델이 즉석에서 만든 계산기가 잘못된 공식을 쓰고 있다면, 그로 인한 오해의 책임은 어디에 귀속되는가. 이 질문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모델 제공자, 앱 개발자, 사용자 사이에 새로운 책임 배분의 규칙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기술 문제이자 법·제도의 문제입니다.
▸ 정해진 메뉴의 시대가 저물 때
제미나이 3의 LMArena 1501 Elo는 이번 달의 숫자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다음 달에 경쟁사가 더 높은 점수를 낼 수 있고, 그때마다 왕좌는 다시 주인이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발표가 남긴 더 단단한 유산은 순위표에 있지 않습니다. 인터페이스가 정해진 메뉴가 아니라 즉석에서 쓰여지는 코스가 될 수 있다는 개념, 그 개념이 구체적 제품으로 드러난 첫 본격적 순간이 이번 공개라는 점이 유산입니다.
2026년의 웹과 앱은 지금과 다른 모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면은 고정된 페이지가 아니라, 질문을 받은 순간 조립되어 나오는 살아 있는 무언가가 될 것입니다. 그 변화 앞에서 우리가 정말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해진 메뉴판을 넘기던 시대의 습관을, 우리는 얼마나 빨리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조직은 지금 어떤 식당을 운영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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