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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점을 경고한 문서가 변호한 회사 : 미 법무부가 법정에 낸 문장

과점을 경고한 문서가 변호한 회사 : 미 법무부가 법정에 낸 문장

5년에 최대 2억 5,000만 달러. OpenAI가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포스트, 더 타임스를 거느린 News Corp에 콘텐츠 사용 대가로 약속한 것으로 보도된 금액입니다. 현금과 서비스 크레딧을 합친 계약 규모인데요. 이런 매체 계약이 알려진 것만 스무 건 가까이 있고, 160곳이 넘는 매체가 거기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습 데이터에 값을 치르는 일은 법정 바깥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미국 정부가 법정에 낸 문서는, 그 값을 치르게 만드는 것이 공익에 반한다고 말합니다.

현지 시각 9월 1일 화요일 밤, 미국 법무부가 뉴욕타임스 등이 OpenAI와 Microsoft를 상대로 낸 저작권 소송에 이해관계 진술서(statement of interest)를 제출했습니다. 보도는 이튿날 나왔고요. 법무부는 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닙니다. 제3자 자격으로 의견을 낸 것인데, 저작물로 대규모 언어모델을 학습시키는 행위는 공정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미국 정부가 AI 학습과 저작권 문제를 두고 법정에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알려진 한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연방법원 청사. 뉴욕타임스와 OpenAI의 저작권 소송이 계류 중인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이 이 건물에 있습니다.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연방법원 청사. 뉴욕타임스와 OpenAI의 저작권 소송이 계류 중인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이 이 건물에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타이밍이 공교롭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의 시드니 H. 스타인 판사는 양측에 금요일까지 약식판결(summary judgment) 신청서를 내라고 명령해 둔 상태였는데요. 그 금요일이 바로 오늘입니다. 판사가 학습 행위의 공정이용 여부를 정면으로 판단하겠다고 나선 사흘 전 밤에, 행정부가 저울 위에 손을 얹은 셈입니다.

▸ 승부처는 저작권이 아니라 시장 구조였습니다

이 문서에서 가장 날이 선 문장은 저작권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시장 구조에 관한 것입니다.

"가장 큰 기술기업들이 라이선스 진입장벽 때문에 대규모 언어모델 학습을 과점하게 되는 것은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장벽은 주로 낡은 주류 언론사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으로 기능한다."

라이선스료를 감당할 자본을 가진 것은 최대 기술기업들뿐일 것이라는 문장도 같은 문서에 들어 있습니다. 창작자 대 AI라는 구도를 거대 기업 대 작은 개발자라는 구도로 갈아 끼운 것이죠. 그리고 이 구도는 그 자체로는 반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습에 쓴 저작물마다 대가를 치르라고 법이 요구하는 순간, 그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회사는 정말로 몇 곳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논리의 수혜자가 지금 피고석에 앉아 있습니다. 문서가 경고한 과점의 구성원을 꼽아 보면 첫 줄에 OpenAI가 옵니다. 앞에서 본 News Corp 계약이 그 증거고, 2023년 12월 Axel Springer와 맺은 3년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는 연 수천만 유로 규모로 보도했습니다. 라이선스료를 낼 수 있는 가장 큰 기술기업이라는 정의에서 OpenAI가 빠질 이유가 없죠. 소규모 개발자와 대학 연구실을 지킨다는 논변이 이 소송에서 당장 지켜 주는 것은 피고입니다.

문서에 적히지 않은 사실도 하나 있습니다. 지난 7월, OpenAI가 미국 정부에 자사 지분 5%를 갖도록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당시 거론된 기업가치 8,520억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약 426억 달러어치입니다. 협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학습이 공정이용이라고 법정에 써낸 정부와 그 피고 회사 사이에 지분 이야기가 오갔다는 보도가 있는데, 진술서에는 그 언급이 없습니다.

▸ 구속력이 0인 문서를 굳이 낸 이유

물론 이 문서는 판결이 아닙니다. 이해관계 진술서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스타인 판사는 이 의견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한 줄도 인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구속력은 0인데요. 그런데도 미국 법무부 송무담당 차관(Associate Attorney General)인 스탠리 우드워드 주니어는 X에 올린 글에서 이것을 "역사적인 이해관계 진술서"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구속력이 없는 문서의 진짜 청중이 판사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쟁점을 다투는 저작권 소송이 지금 미국 법원 여러 곳에 계류 중이고, 이 문제는 법원이 아니라 의회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오고 있습니다. 판례를 만드는 문서가 아니라 분위기를 만드는 문서인 셈이죠. 진술서가 국가안보까지 끌어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미국에서 견고한 AI 산업을 만드는 일을 현저히 어렵게 하는 법 규칙은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취지의 문장이 들어가 있는데, 저작권 사건의 판단 기준에 국가안보가 들어갈 자리는 원래 없습니다.

▸ 양쪽 다 맞는 부분이 있고, 아직 아무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법무부의 지적이 전부 정치적 수사인 것은 아닙니다. 라이선스 의무화가 진입장벽이 된다는 말은 실증적으로 옳습니다. 가중치를 공개하는 오픈웨이트 진영과 대학 연구실은 160곳이 넘는 매체와 계약을 맺을 돈이 없습니다. 법이 모든 학습에 계약을 요구하는 순간,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주체는 계약 부서를 가진 조직으로 좁혀지죠.

반대쪽 지적도 옳습니다. 뉴욕타임스 대변인인 그레이엄 제임스는 허락도 보상도 없이 콘텐츠를 가져가게 두자는 행정부의 제안이 건강한 사회가 의존하는 인간 창작 콘텐츠의 지속가능성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작가조합(Authors Guild)의 CEO인 메리 라센버거는 이 문서가 오류투성이 논변과 공정이용 법리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로 가득하다고 했고요. 학습 데이터가 없으면 모델도 없다는 말이 맞다면, 데이터를 만드는 쪽에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 구조는 데이터 자체를 마르게 합니다. 언론사가 문을 닫으면 학습할 새 기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양쪽의 표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닮은 데가 있습니다. 법무부는 라이선스료를 낡은 주류 언론사에 대한 보조금이라고 불렀고, 뉴욕타임스는 행정부가 1조 달러짜리 AI 기업들 편에 섰다고 했습니다. 상대를 경제적 캐릭터로 줄여 부르는 방식이 서로 똑같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어느 법원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지난 7월 20일 최종 승인된 앤트로픽의 저작권 집단소송 합의는 15억 달러 규모였는데요. 대상은 불법 복제본으로 모아 둔 약 50만 건의 저작물이었습니다. 파일을 어떻게 모았는가를 두고 치른 값이지, 학습이 공정이용인가라는 질문에 답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스타인 판사 앞에 놓인 것이 바로 그 질문이고요.

▸ 한국은 다른 문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같은 다툼이 진행 중입니다. KBS와 MBC, SBS 세 방송사는 2025년 1월 13일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와 하이퍼클로바X 학습에 뉴스를 무단으로 썼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과 학습 금지를 청구했습니다. 올해 4월 9일 네 번째 변론까지 진행됐고 아직 선고 전입니다.

눈여겨볼 것은 네이버가 든 방패입니다. 미국 정부가 공정이용 하나로 정면 돌파를 시도한 것과 달리, 네이버가 가장 앞세운 것은 계약입니다. 2020년 뉴스콘텐츠 제휴 약관에 서비스 개선과 새로운 서비스 개발을 위한 연구에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니 이미 대가를 치른 이용이라는 논리인데요. 저작권법 제7조, 사실의 전달에 불과한 시사보도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조항과 공정이용 항변은 그 뒤에 겹으로 붙어 있습니다. 재판부가 양측에 공정이용 항변자료를 따로 요구한 것을 보면 결국 같은 질문에 닿기는 합니다. 다만 첫 관문이 계약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방향이 뒤집힌 대목도 있습니다. 한국신문협회는 2025년 4월 네이버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시장지배적지위 남용과 불공정거래행위 혐의였는데요.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저작권이 아니라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문제로 끌고 가려는 쪽이 언론사입니다. 미국에서는 같은 반독점 논리를 정부가 AI 회사를 변호하는 데 썼고요. 같은 도구가 태평양 양쪽에서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문서 하나로 미국이 AI 학습을 합법화한 것은 아닙니다. 판단은 스타인 판사가 독립적으로 합니다. 오늘 마감되는 양측의 약식판결 신청서와 그 뒤에 이어질 심리에서 무엇이 정해지든, 한국 법원의 판단은 또 별개고요. 다만 한국어 학습 데이터의 상당 부분이 뉴스라는 사실은 그대로 남습니다. 미국 모델은 학습 문제에서 풀려나고 한국 모델은 국내 판례에 묶이는 비대칭이 생길 수도 있겠죠. 국가대표 모델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모델이 무엇을 읽고 자랄 수 있는지부터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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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미국 법무부 청사(로버트 F. 케네디 빌딩) — Wikimedia Commons, A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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