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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5대와 연 131대 : 중국이 같은 주에 꺼낸 두 장의 카드

연 5대와 연 131대 : 중국이 같은 주에 꺼낸 두 장의 카드

1984년, 필립스와 ASM 인터내셔널이 절반씩 출자한 작은 합작 사내벤처가 네덜란드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ASML이었지요. 그때 반도체 노광장비 시장의 주인은 일본의 니콘과 캐논이었고, ASML은 오랫동안 3위권을 벗어나지 못한 후발주자였습니다.

판이 뒤집힌 것은 2000년대 중반입니다. ASML은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물을 채워 빛을 더 잘게 꺾어 쓰는 이머전(immersion) 방식에 회사를 걸었습니다. 경쟁사들이 다른 길을 고집하는 동안, ASML은 표준 그 자체가 되었지요. 오늘 우리가 "ASML이 없으면 첨단 반도체를 못 만든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40년 전에는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노광 패권은 이미 한 번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다만 그 역전에 20년이 걸렸습니다.

이번 주 뉴스는 이 한 문장의 앞부분에 무게를 두는지, 뒷부분에 무게를 두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그리고 시장은 하루 만에 앞부분을 골랐습니다.

7월 27일, 중국 최대 D램 업체인 창신메모리(CXMT)가 상하이 STAR마켓에 상장해 공모가 8.66위안에서 종가 49위안으로 뛰었습니다. 종가 기준 상승률은 약 466%, 매체에 따라 470% 안팎으로 표기됩니다. 조달액 579.2억 위안(약 86억 달러)으로 중국 반도체 사상 최대 규모이며, 종가 기준 시가총액 약 4,900억 달러로 중국 본토 상장사 1위에 올랐습니다.

다음 날 로이터가 단독 보도를 내놨습니다. 중국이 자체 개발한 이머전 DUV 노광장비의 소량 양산에 들어갔다는 내용입니다. ASML이 독점해온 그 영역이지요.

그리고 같은 날, 코스피는 732.09포인트, 10.84% 떨어져 6,023.66으로 마감했습니다. 코스닥은 7.72% 하락해 705.85로 마감했고, 두 시장 모두 개장 직후 매도 사이드카(코스피는 오전 9시 6분)에 이어 서킷브레이커까지 걸렸습니다. 삼성전자가 13%대, SK하이닉스가 14%대 빠졌습니다. 외신은 두 회사 모두 약 20년 만의 일일 최대 낙폭이라고 전했습니다.

▸ 연 5대와 연 131대 : 숫자는 틀리지 않았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헤드라인은 "중국이 이머전 DUV를 만들었다"입니다. 그런데 노광기의 실력은 나노미터로 매겨지지 않습니다. 시간당 몇 장의 웨이퍼를 처리하는지, 라인을 며칠 세우지 않고 돌 수 있는지, 층과 층을 겹칠 때 정렬 오차가 몇 나노미터인지, 그래서 최종 수율이 몇 퍼센트인지로 매겨지지요.

보도 자체가 이 점을 정직하게 적었습니다. 중국산 장비는 아직 ASML 장비에 크게 못 미치고, 실제 양산 라인에 투입하려면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고요. 처리 속도와 정렬 정밀도, 장기 신뢰성에서 한 세대 가까이 뒤진다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목표 노드는 28nm 단일 노출이고, 여러 번 겹쳐 찍는 멀티패터닝을 쓰면 7nm, 잠재적으로 5nm까지 갈 수 있다고 보지만 수율은 최선단 장비에 못 미친다는 평가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주체는 상하이 아이성나전자기술그룹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영 기업으로, 노광 스타트업 위량성과 SMEE의 인력을 흡수했습니다. 관련 회사들은 로이터의 확인 요청에 답하지 않았고,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도 없습니다.

숫자는 더 냉정합니다. 올해 목표 출하량이 약 5대, 내년이 약 20대입니다. 첫 물량은 SMIC, 화훙, 그리고 CXMT로 갑니다. 같은 기간 ASML은 이머전 DUV만 2025년에 131대를 실었고 올해도 130대 안팎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5대와 131대. 이 격차를 보고도 코스피가 10.84% 빠진 이유는, 시장이 성능에 반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장이 반응한 것은 천장이 사라졌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지금까지 중국 D램의 증설 한계는 기술이 아니라 장비를 살 수 없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 조건이 느슨해지면, 장비 성능이 한 세대 이상 뒤져 있어도 범용 D램은 결국 물량 게임이라 셈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엔지니어가 던져야 할 질문은 "몇 나노냐"가 아닙니다. 몇 년이고, 몇 대냐입니다.

▸ 한 발 물러서 보면 : 격차는 아직 3년 안팎입니다

균형을 잡아야 할 대목이 여럿 있습니다.

먼저 CXMT의 위치입니다. 카운터포인트 집계로 2026년 1분기 글로벌 D램 점유율은 8%, 1년 전에는 3%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분기 삼성전자는 38%, SK하이닉스는 29%였습니다. 시가총액도 약 4,900억 달러로 SK하이닉스의 절반 남짓입니다. AI 메모리의 심장인 HBM에서는 HBM3를 올해 말 목표로 삼고 있고, 경쟁력 있는 수율의 양산은 2028년 이후로 보는 애널리스트 전망이 우세합니다. 대략 3년의 격차이지요. 게다가 CXMT는 6월 8일 미국 국방부의 이른바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올랐습니다. 이 명단 자체가 수출통제나 거래금지는 아니고 국방부 조달 배제가 주된 효과이지만, 정치적 신호로는 무게가 있습니다.

7월 28일의 폭락도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CXMT 상장 흥행이 부른 범용 D램 공급과잉 우려, 국산 노광장비 보도가 부른 증설 제약 해제 우려, 그리고 전날 밤 뉴욕에서 엔비디아가 OpenAI 데이터센터 보증을 둘러싼 순환금융 논란으로 급락한 것까지, 최소 세 겹입니다. 국내 일부 매체는 미국 반도체주 약세를 1차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중국 때문에 코스피가 무너졌다"는 문장은 편하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시장 안에서도 해석이 갈렸습니다. 그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약 5조 원을 팔았지만, 개인은 4.33조 원을 사들였습니다. 같은 뉴스를 놓고 한쪽은 구조의 변화로, 한쪽은 과도한 공포로 읽은 것이지요.

▸ 상단 한 칸에 국가 시가총액을 걸어둔 나라

그런데 불편한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습니다.

1980년대 D램 시장의 주인은 일본이었습니다. 그때 후발주자는 삼성이었고, 앞서 있던 쪽에서는 "따라올 수 없다"는 평가가 흔했습니다. 1990년대에 그 문장은 뒤집혔지요. 지금 우리가 CXMT를 두고 하는 말들은, 문장 구조가 그때와 거의 같습니다. 주어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CXMT는 2016년에 세워졌고 허페이 시정부 자본이 오래 버텨줬습니다. 매출은 2025년 약 618억 위안으로 1년 만에 156% 늘며 창립 이래 첫 연간 흑자를 냈습니다. 12인치 웨이퍼 생산능력은 2025년 말 월 약 28만 장에서 올해 말 35만 장, 2028년 말 55만 장까지 늘리는 계획입니다. 이번에 조달한 돈도 신규 팹과 기존 라인 업그레이드, 차세대 D램과 HBM 연구개발로 갈라져 들어갑니다.

수요 쪽 신호도 있습니다. 애플이 중국 판매용 기기에 쓸 CXMT D램을 시험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달 초 나왔지요. 이것이 알리는 것은 성능 경쟁의 결과가 아닙니다. 구매 기준이 성능에서 공급 안정성으로 옮겨가는 국면입니다. 최고가 아니어도 충분히 쓸 만하고 정치적으로 안전하면 사겠다는 판단이니까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HBM이라는 상단 한 칸에 국가 시가총액의 상당 부분을 걸어두었습니다. 그 한 칸은 여전히 우리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는 그 사이 하단인 범용 D램과, 지하인 장비를 동시에 파고 있었습니다.

▸ 주권의 최하층은 모델이 아니라 노광기입니다

여러분, 저는 소버린 AI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대체로 모델과 데이터, 데이터센터까지만 내려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흘이 보여준 것은 그 아래에 층이 더 있다는 사실입니다. 데이터센터 밑에 반도체가 있고, 그 밑에 파운드리가 있고, 그 밑에 노광기가 있습니다. 모델 주권을 말하려면 결국 장비 주권이라는 지하실을 통과해야 합니다.

코스피는 6월 22일 사상 최고 종가 9,114에서 한 달여 만에 6,000선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낙폭 전부를 중국의 두 장짜리 카드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장이 하루에 던진 답보다, 우리가 오래 붙들어야 할 질문 쪽이 중요하지요. 중국산 노광기가 양산 라인에서 몇 대까지 늘고 얼마의 수율을 내는지, CXMT의 증설이 계획표대로 범용 D램 가격을 흔드는지, HBM의 3년 격차가 유지되는지 좁혀지는지. 확인해야 할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ASML의 역전에는 20년이 걸렸습니다. 후발주자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선발주자에게는 결코 안심할 만한 시간이 아닙니다. 니콘과 캐논이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잘하던 방식이 다음 판에서도 이길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그 한 칸은, 다음 판에서도 같은 자리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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