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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그 월요일 아침 이후 : 중국 AI가 그려온 1년의 궤적

1년 전 그 월요일 아침 이후 : 중국 AI가 그려온 1년의 궤적

1년 전 이맘때의 월요일 아침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2025년 1월 27일, 뉴욕 증시가 열리자마자 엔비디아(NVIDIA) 주가가 -17% 폭락했습니다. 시가총액 5,890억 달러가 하루 만에 공기 중으로 사라졌습니다. 미국 증시 역사상 하루에 가장 많은 돈을 잃은 기업이라는 기록이 세워진 날이었지요.

이 폭락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중국의 작은 스타트업이 내놓은 오픈소스 모델이었습니다. 딥씨크(DeepSeek R1). 일주일 전인 1월 20일에 공개된 이 모델은 MIT 라이선스로 풀렸고, 전해 12월에 공개된 딥씨크 V3의 논문에는 훈련 비용 약 557만 6천 달러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업계가 믿고 있던 '수백억 달러의 GPU를 쌓아야 최고 모델이 나온다'는 전제를 정면으로 흔드는 숫자였지요.

그 월요일 이후, 저는 여러 독자분들께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제 중국이 AI를 이기는 건가요?", "미국의 규제가 소용없었다는 건가요?",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시 저는 이런 질문에 답을 조심스럽게 아꼈습니다. 하루의 사건으로 세상이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1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돌아보자고 말씀드렸지요.

그 1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차분히 정리해볼 시간입니다.

▸ 딥씨크는 어디로 갔는가

딥씨크 자체는 2025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R1 이후에도 여러 후속 모델을 공개했고, 중국 내 스타트업과 연구소들이 R1을 기반으로 파생 모델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출발점 역할을 했지요. 2024년 12월 시점에 소규모 연구 조직이었던 이 회사는, 2025년 말에는 글로벌 AI 지형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만 흥미롭게도, 딥씨크가 유일한 중국 AI 기업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딥씨크 쇼크를 계기로 세상이 주목하게 된 것은 중국 AI 생태계 전체의 두께였습니다. R1이 보여준 것은 "중국의 한 회사가 놀라운 모델을 만들었다"가 아니라, "중국에는 이런 회사가 여러 개 있다"는 사실이었지요. 그 증거가 2025년 한 해 동안 차례로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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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Alibaba)의 Qwen 시리즈는 중국 오픈소스 생태계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Qwen 2.5와 3 계열은 글로벌 허깅페이스(Hugging Face) 다운로드 순위에서 상위권을 지켰고, 수많은 파인튜닝 모델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Moonshot AI는 긴 컨텍스트 윈도우에 특화한 모델로 차별화했고, MiniMax는 멀티모달과 비디오 생성에서 독자 영역을 구축했으며, Zhipu AI의 GLM 시리즈는 중국어·영어 이중 언어에서 강점을 보였습니다. 이 회사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미국 규제에 맞서는 중국 AI 생태계의 층을 두껍게 만들어왔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2025년 한 해 동안 반도체 수출 규제를 더 조였다는 사실입니다. 엔비디아 H100·H200의 대중국 판매는 더 엄격해졌고, 저사양 대체품 H20의 일부 라인업도 제한되었지요. 결과는 규제를 설계한 쪽이 의도한 것과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중국은 알고리즘 효율화(딥씨크의 MoEMixture of Experts 구조와 강화학습 기법의 확산), 국산 칩의 실전 투입(화웨이(Huawei Ascend) 계열), 에너지 인프라의 공격적 확장을 동시에 밀고 나갔습니다. 기술 제재는 단기적으로 타격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자립 생태계를 키운다는 역사 패턴이 또 한 번 반복된 것이지요. 1960년대 소련에 대한 컴퓨터 수출 규제나 1980년대 일본 반도체 협정이 역설적으로 한국 반도체를 키운 틈을 만들었던 일처럼 말입니다.

▸ 2026년 초, 긴장이 더 높아진 이유

그런데 2026년에 들어서면서 이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요 AI 회사들이 중국 모델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distillation 공격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있습니다. Distillation이란, 상업용 모델에 대량의 질의를 던지고 그 응답을 수집해 자신의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법입니다. 모델 가중치를 훔치지 않아도, 답변 패턴을 대규모로 수집하면 비슷한 성능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식당의 비밀 레시피를 훔치지 않고도 그 식당의 요리를 100번 먹어본 뒤 비슷하게 복원해내는 일. 거칠게 비유하자면 이런 구도입니다. 이것이 저작권 침해인지, 영업 비밀 침해인지, 혹은 서비스 약관 위반에 그치는 수준인지는 법적으로도 명료하지 않습니다. 오픈(AIOpenAI)와 앤트로픽이 이 문제를 반복해 제기하고 있고, 앞으로 몇 달 안에 구체적 고발 또는 법적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오래된 달력 페이지들이 벽에 정리되어 있고 그 중 하루의 숫자가 붉은 원으로 표시된 상징적 장면

▸ 한국이 이 풍경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자, 이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1년 전 딥씨크 쇼크 직후에 저는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썼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답은 조금 더 복잡해졌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미국 AI 생태계의 깊은 일부입니다. 네이버·카카오, 삼성·LG, 금융지주와 통신 3사의 AI 전략은 상당 부분 미국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조용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많은 한국 스타트업과 연구소가 중국 오픈소스 모델을 연구 용도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Qwen과 GLM을 파인튜닝해 한국어 성능을 올린 모델들이 허깅페이스에 꾸준히 올라왔고, 국내 일부 제조업체들이 내부 데이터 보안을 이유로 중국 오픈소스 모델을 온프레미스(on-premise)로 돌리는 실험을 시작하기도 했지요. 미국 모델의 압도적 점유율이 전부가 아니라, 오픈소스의 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도 조용히 커지고 있다는 것이 1년간의 변화입니다.

저는 2025년 가을에 '소버린 AI'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우리의 AI 인프라를 남의 집 월세에 비유했었습니다. 월세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주인이 규칙을 바꾸면 거기에 맞춰야 하는 처지가 된다는 것이 약점이지요. 지난 1년은 이 약점이 가상의 위협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미국 회사들은 distillation 의혹을 들며 API 접근 제한을 검토하고 있고, 중국 정부는 자국 데이터의 해외 모델 학습 사용을 더 엄격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은 두 가지를 동시에 밀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는 글로벌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 제조·금융·의료·공공 버티컬 솔루션을 쌓아 응용의 최고 수준에 도달하는 것. 다른 하나는 국가대표급 한국어·한국 문화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을 꾸준히 유지·개선하는 것. 이 두 축이 함께 가야 지정학적 긴장이 올 때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 2025년 1월 27일의 월요일 아침이 남긴 것

1년 전 그 월요일로 돌아가 봅시다. 5,890억 달러의 증발은 분명 충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그 사건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숫자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AI의 지형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한 번의 혁신이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진짜 교훈이었지요.

2026년 이 시점에 우리는 또 다른 '딥씨크 쇼크'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사건이 왔을 때 무너지지 않을 기반기회로 바꿀 유연성을 갖고 있는지입니다.

기술의 역사는 늘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규제와 혁신은 거울 관계라는 것을요. 닫으려는 손과 여는 손은 같은 무대 위에서 움직이고, 그 사이에서 새 판이 짜입니다. 1년 전의 월요일 아침을 기억하는 우리가 2026년 끝에 또 하나의 '새로운 월요일'을 맞이할 때, 여러분은 그 아침에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실까요. 저는 그 준비의 핵심이 남의 기술을 구경하는 자세가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묻는 자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딥씨크 #중국AI #Qwen #Moonshot #MiniMax #규제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