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첫 아이폰(iPhone)을 무대에 올렸을 때, 그는 서드파티 앱에 대해 놀라울 만큼 단호했습니다. 개발자들이 아이폰에서 프로그램을 돌리고 싶다면 웹앱을 만들라고 했지요. 사파리(Safari) 브라우저 안에서 돌아가는 웹페이지 말입니다. 남이 짠 코드가 자기 기기의 속살로 들어오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애플(Apple)이라는 회사의 정체성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한 손으로 통제하는 '닫힌 정원(walled garden)'에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잡스의 그 고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년 반 뒤인 2008년 7월, 애플은 앱스토어(App Store)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개방이야말로 아이폰을 '전화기'에서 '플랫폼'으로 바꾼 결정적 한 수였지요. 닫아서 완벽을 지키려던 회사가, 열어서 제국을 얻은 것입니다.
2026년 6월 8일, 저는 그 2008년의 장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애플이 세계 개발자 회의(WWDC 2026)에서 아이폰의 목소리, Siri를 남의 AI에게 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 무엇이 열렸나 : 관문을 내주다
이번에 공개된 것은 iOS 27의 '익스텐션(Extensions)'이라는 프레임워크입니다. 지금까지 Siri, 글쓰기 도구(Writing Tools),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Image Playground) 같은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 기능은 애플이 정한 두뇌만 쓸 수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챗GPT(ChatGPT) 하나가 유일한 외부 파트너였지요. 그런데 이제 사용자가 설정 화면에서 클로드(Claude), 챗GPT, 제미나이(Gemini), 그록(Grok) 가운데 하나를 골라 시스템의 기본 AI로 지정할 수 있게 됩니다. 전용 마켓플레이스까지 열린다고 하니, 이는 단순한 파트너 추가가 아니라 관문 자체를 개방하는 결정입니다.
더 상징적인 대목은 Siri의 두뇌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재구축된 Siri는 구글(Google)의 제미나이 모델이 구동하되, 그 모델이 애플 자체 서버인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Private Cloud Compute) 위에서 돌아가는 구조라고 합니다. 애플이 구글에 연 약 10억 달러(약 1.4조 원)를 지불하고 Siri 전용으로 맞춤 제작한 1.2조 파라미터(parameter) 규모의 제미나이를 들여온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졌지요. 물론 이 수치들은 아직 애플이 공식 확인한 숫자가 아니라 보도와 추정을 종합한 것이므로, 저는 여기에 단정의 무게를 싣지는 않겠습니다.
기능들은 iOS 27·아이패드OS 27·맥OS 27에 실립니다. 개발자용 시험 버전은 이미 배포되었고, 일반 공개는 새 아이폰이 나오는 2026년 9월쯤으로 예상됩니다. 재구축된 Siri와 익스텐션을 온전히 쓰려면 대략 아이폰 15 프로(iPhone 15 Pro) 이후 기종이 필요하다고 하지요.
▸ 개방인가 후퇴인가 : 같은 사건의 두 얼굴
여기서 저는 한 발 물러서서 이 사건을 두 방향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같은 문이라도, 열리는 이유는 정반대일 수 있으니까요.
개방으로 읽는 눈. 사용자 관점에서 이것은 분명한 진전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애플이 정해준 AI를 그냥 써야 했습니다. 이제는 코딩엔 클로드, 검색엔 제미나이, 잡담엔 챗GPT 하는 식으로 취향에 맞춰 두뇌를 바꿔 낄 수 있습니다. 2008년 앱스토어가 '앱의 선택권'을 사용자에게 넘겼듯, 2026년의 익스텐션은 '지능의 선택권'을 넘기는 셈이지요. 앤트로픽·오픈AI·구글에게도 10억 대가 넘는 애플 기기라는 어마어마한 유통망이 열립니다.
후퇴로 읽는 눈. 그렇지만 저는 반대편의 목소리도 정직하게 옮겨야겠습니다. 애플은 지난 2년간 자체 AI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예고했던 '똑똑한 Siri'는 계속 미뤄졌지요. 이번 개방은 결국 자기 두뇌로 경쟁하기를 포기하고, 남의 두뇌를 빌려 오는 외주 결정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일부 외신은 애플이 서드파티 Siri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도 WWDC 무대에서 그 작동을 온전히 시연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자신 있는 회사의 태도로 보기는 어려운 대목이지요.
저는 이 두 해석 중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기술의 역사에서 개방과 후퇴는 자주 같은 문으로 드나들었다는 점만 짚어두겠습니다. IBM이 1981년 PC의 규격을 개방한 것도, 넷스케이프(Netscape)가 브라우저 소스를 공개한 것도, 훗날 돌아보면 '전략적 개방'과 '수세적 후퇴'가 한 몸이었습니다.
▸ 10억 대와 10억 달러 : 숫자의 방향을 뒤집어 보면
이 사건에는 공교롭게도 '10억'이라는 숫자가 두 번 등장합니다. 애플이 여는 기기 유통망은 10억 대, 애플이 구글에 치르는 값은 연 10억 달러. 저는 이 두 숫자의 방향이 서로 반대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10억 대는 애플이 내주는 것입니다. 그 관문을 통과하는 AI 회사는 사용자 접점을 통째로 얻습니다. 반면 10억 달러는 애플이 치르는 값입니다. 그런데 매년 10억 달러를 내고 남의 모델을 빌린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애플이 그 돈으로도 따라잡지 못한 격차가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숫자는 틀리지 않았지만, 그 숫자가 자랑인지 실토인지는 읽는 방향에 달려 있지요. 표면의 '개방'이라는 단어 아래에는 이런 계산서가 조용히 깔려 있습니다.
▸ 한국에서 이 문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가
한국의 아이폰 사용자와 개발자에게 이번 결정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사용자에게는 '내 폰의 AI를 내가 고르는' 시대가 열립니다. 다만 초기 파트너 목록이 미국 회사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은 기억해둘 만합니다. 한국어 처리의 결과 품질이 회사마다 다를 것이고, 그 차이를 스스로 비교하고 고르는 안목이 필요해집니다. AI가 답을 대신 주는 시대일수록, 어떤 AI에게 물을지 고르는 판단은 오롯이 사람의 몫으로 남지요.
둘째, 국산 AI에게는 기회이자 시험대입니다. 만약 이 익스텐션 마켓플레이스가 진정으로 열린 구조라면, 하이퍼클로바(HyperCLOVA) 같은 국내 모델이 한국어에 특화된 두뇌로 그 목록에 이름을 올릴 여지가 생깁니다. 자국어와 자국 맥락에서 더 잘 작동하는 AI라면, 10억 대의 관문에서도 한 자리를 얻을 명분이 충분하지요. 문제는 그 문턱을 넘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입니다.
여러분, 2008년에 앱스토어가 열렸을 때 그 문을 먼저 통과한 개발자들이 다음 10년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2026년, 애플이 지능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 문 앞에 우리는 어떤 두뇌를 들고 서 있을 것인가 — 남이 만든 두뇌를 잘 고르는 사용자로 남을지, 그 문을 통과할 두뇌를 직접 만드는 쪽에 설지. 닫힌 정원의 문이 열릴 때 가장 바쁜 것은 언제나 문 안이 아니라 문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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