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접을 보러 가면서 회사의 부품을 챙겨 가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제품의 실물 조각을, 가방에 넣어 새 회사 면접관 앞에 꺼내 놓으라는 이야기입니다. "show and tell", 그러니까 보여주며 설명하는 시간을 위해서요.
지난 2026년 7월 10일 금요일, 애플Apple이 오픈AIOpenAI를 상대로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애플은 오픈AI의 하드웨어 총괄 탕 탄Tang Tan이 애플 직원 출신 면접 후보들에게 바로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합니다. 탄은 원래 애플에서 아이폰과 애플워치의 제품 디자인을 이끌던 부사장이었죠.
애플의 표현은 격렬합니다. 절취가 "모든 단계에서at every level" 벌어졌다고 했고, 오픈AI의 하드웨어 사업을 두고 "핵심까지 썩었다rotten to its core"고까지 적었습니다. 청구원인은 영업비밀 침해trade secret misappropriation와 계약 위반입니다.
저는 이 소송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 혐의의 자극적인 문구가 아니라, 애플이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 방식으로 칼을 뽑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실리콘밸리 엔지니어 노동시장의 가장 예민한 신경이 지나가고 있거든요.
▸ 안방을 내준다는 것 : 왜 애플이 오픈AI를 걸었나
먼저 배경을 정리해 보죠. 오픈AI는 2025년, 애플의 전설적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Jony Ive가 세운 기기 스타트업 io를 65억 달러(약 8.9조 원)에 인수했습니다. 그해 5월 발표해 7월에 마무리된, 당시 오픈AI 최대 규모의 인수였습니다. 이때 io의 창업자였던 탕 탄을 비롯해 애플 하드웨어를 만들던 베테랑들이 무더기로 오픈AI에 합류했습니다.
이들이 만들고 있는 것은 화면이 거의 없는screenless AI 네이티브 기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트먼Sam Altman은 2025년 말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고 했고, 실제 공개는 2027년 무렵으로 점쳐집니다. 소프트웨어 모델 회사였던 오픈AI가 여러분의 손과 책상 위, 그러니까 지금껏 애플이 지배해 온 소비자 하드웨어의 안방으로 진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애플이 주장하는 숫자가 하나 더 붙습니다. 현재 오픈AI에는 애플 출신 전 직원이 400명 넘게 재직 중이라는 것이죠. 소장에는 창 리우Chang Liu라는 전 선임 전기 엔지니어가 퇴사 후에도 회사 노트북을 반납하지 않고, 버그를 악용해 애플 클라우드 저장소에 접근해 미공개 제품과 기술 사양 등 수십 개의 기밀 파일을 내려받았다는 구체적 혐의도 담겼습니다.
오픈AI의 반박은 짧고 담담했습니다. 대변인 드루 푸사테리Drew Pusateri는 "우리는 다른 회사의 영업비밀에 관심이 없다"며 "모든 이를 이롭게 하는 혁신 기술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고만 밝혔습니다.
▸ 경업금지가 사라진 땅 : 영업비밀이라는 유일한 지렛대
그런데 한 발 물러서 보면 묘한 지점이 보입니다. 인재가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겨 가는 것, 실리콘밸리에서 이것은 병리가 아니라 생리입니다. 애플 스스로도 수십 년간 다른 회사의 인재를 빨아들이며 성장했죠. 그렇다면 애플은 왜 "우리 직원을 빼가지 말라"고 하지 못하고, 굳이 "우리 비밀을 훔쳤다"는 프레임을 택했을까요.
답은 캘리포니아라는 땅의 특수한 법에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경업금지non-compete 조항, 그러니까 "퇴사 후 경쟁사에 가지 않겠다"는 계약을 법으로 무효화하는 주입니다(사업·직업법 §16600). 애플은 떠나는 엔지니어의 발목을 잡을 법적 카드가 애초에 없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폭발적 혁신이 바로 이 자유로운 인재 이동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많죠. 그 자유의 반대급부로, 회사가 쥘 수 있는 유일한 지렛대가 남습니다. 바로 영업비밀입니다.
여기서 이 소송의 진짜 쟁점이 드러납니다. 한 엔지니어가 10년간 애플에서 아이폰을 만들며 쌓은 감각과 판단, 노하우는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자산입니다. 이 암묵지暗默知와, 노트북에 몰래 담아 나온 설계 파일 사이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전자는 그가 새 직장으로 당연히 가져가는 것이고, 후자는 명백한 절도입니다. 문제는 현실의 사건 대부분이 이 둘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벌어진다는 것이죠. "부품을 들고 면접에 오라"는 지시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회색지대를 넘어 검은색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법정에서 그 선을 증명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 남 일이 아닌 이유 : 한국 엔지니어의 책상 위에서
여러분은 이 이야기가 태평양 건너의 거대 기업 싸움일 뿐이라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부품을 들고 면접장에 들어서는 장면은,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서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삼성과 SK, LG 사이에서, 또 이들과 해외 기업 사이에서 핵심 인력의 이동과 기술유출을 둘러싼 분쟁은 수없이 반복돼 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법의 결이 미국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캘리포니아와 달리 합리적 범위의 경업금지 약정을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고, 국가핵심기술을 다루는 산업에는 별도의 보호 장치까지 두고 있습니다. 같은 사건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애플은 영업비밀 대신 경업금지 위반이라는 더 손쉬운 카드를 먼저 꺼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소송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하나는 기업의 질문입니다. AI라는 기술 자체가 무기가 되는 시대에, 기업의 진짜 자산은 서버 안의 모델일까요, 아니면 그 모델을 만든 사람들의 머릿속일까요. 다른 하나는 엔지니어 개인의 질문입니다. 내가 이직하며 가져가는 것은 어디까지가 나의 실력이고, 어디부터가 남의 비밀인가요.
애플과 오픈AI의 법정 공방은 아마 몇 년을 끌 것입니다. 그 사이 오픈AI의 화면 없는 기기는 세상에 나올 것이고, 우리는 소송의 승패와 무관하게 그 기기를 손에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술은 늘 법정보다 빠르니까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AI 경쟁의 다음 전장은 더 이상 벤치마크 점수판이 아니라, 그것을 물성物性으로 구현하는 하드웨어와, 그 하드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요.
여러분이 지금 다루고 있는 그 지식은, 회사의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것입니까.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이 시대의 이동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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