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주에 iOS 27로 올리고 나서 Siri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 보셨다면, 아직은 별 차이를 못 느끼셨을 겁니다. 새 Siri는 영어 베타로만 시작했거든요. 한국어는 다음 달에 들어옵니다. 프랑스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도 같은 시기예요.
애플은 9월 14일 iOS 27을 공개 배포했습니다. 몇 년째 미뤄지던 Siri 개편이 이 업데이트에 들어 있었고요. Apple Intelligence는 iPhone 16 이후 기종과 iPhone 15 Pro·15 Pro Max에서 동작합니다. EU에서는 iOS·iPadOS·watchOS에서 Siri AI가 켜지지 않는데 맥과 Vision Pro에서는 제공됩니다. 중국에서는 규제 요건을 정리하는 동안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발표에서 Siri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게 됐는지보다 먼저 읽어 본 대목이 있었습니다. 제가 던진 질문이 어느 회사의 서버에서 계산되는가입니다. (실은 이것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보증 문장은 그대로인데 그 문장의 주어가 달라졌습니다
애플이 이번 보도자료에서 프라이버시를 정리한 문장은 이렇습니다.
"Private Cloud Compute가 사용자의 요청을 처리할 때, 사용자의 개인 데이터는 저장되지 않으며 애플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접근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같은 문서에서 애플은 새 모델이 "기기에서, 그리고 Private Cloud Compute를 사용하는 서버에서 구동된다"고 적었습니다. 새 기능이 "구글 및 구글의 Gemini 모델과 협업해 맞춤 제작한 차세대 Apple Foundation Models"로 구동된다는 것도 같은 문서에 있습니다. 두 회사는 올해 1월 공동성명으로 이 제휴를 이미 공식화했고, 그 성명에는 Gemini 모델과 함께 클라우드 기술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명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습니다. Apple Intelligence는 애플 기기와 Private Cloud Compute에서 계속 구동되며 애플의 프라이버시 기준을 유지한다고요.
Private Cloud Compute가 무엇인지는 짚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애플이 2024년에 공개한 서버 구조입니다. 기기에서 처리하기 무거운 요청을 애플 실리콘을 얹은 애플 자사 서버로 보내고, 그 서버에 올라간 소프트웨어 이미지를 외부 보안 연구자가 검증할 수 있도록 공개하겠다는 약속이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장치가 여러 겹이었지만 사용자에게 전달된 메시지의 핵심은 단순했어요. 기계의 주인이 애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제가 올해 6월에 바뀌었습니다.
▸ 6월 8일, 애플은 PCC를 외부 데이터센터로 확장했다고 직접 밝혔습니다
애플의 보안 연구 블로그에 「Expanding Private Cloud Compute」라는 글이 올라온 것이 6월 8일입니다. 구글과 엔비디아와 협업해 새로운 Apple Intelligence 작업을 구글 클라우드에서 돌리며, PCC의 프라이버시 약속을 처음으로 제3자 데이터센터까지 확장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쓰인 기술도 적어 놓았어요. 엔비디아 GPU의 기밀 컴퓨팅(confidential computing), 인텔 CPU의 TDX, 그리고 구글의 타이탄(Titan) 칩입니다. 기밀 컴퓨팅은 계산이 도는 동안 GPU 메모리 안에서 입력과 모델 가중치와 결과를 암호화한 채로 두어, 클라우드를 운영하는 사업자조차 평문으로 읽을 수 없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이 문서에서 가장 무거운 문장은 이것입니다.
"인프라가 어디에 호스팅되든, 애플은 PCC 소프트웨어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유지합니다."
읽어 보면 정의가 다시 쓰였다는 것이 보입니다. 2024년의 Private Cloud Compute는 애플이 소유한 기계였습니다. 2026년의 Private Cloud Compute는 외부 사업자의 기계에서 도는, 애플이 서명하고 통제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보증 문장은 글자 그대로 유지됐는데, 그 문장의 주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달라진 것이지요. 안전의 근거가 하드웨어 소유에서 검증 가능한 증명으로 옮겨갔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여기서 애플이 무엇을 숨겼다는 방향으로 읽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애플은 구글 클라우드에 놓인 하드웨어 전량을 암호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록을 덧붙이기만 할 수 있는 원장(append-only ledger)으로 관리한다고 밝혔고, 바이너리를 전부 공개하며, Apple Security Bounty를 통해 연구자에게 연구 모드로 돌아가는 실제 PCC 노드에 접근할 수 있게 하겠다고 적었습니다. 2024년에 한 검증 공개 약속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외부 데이터센터까지 끌고 간 셈이지요.
이 확장의 배경으로 보도된 내용은 나흘 앞서 나왔습니다. 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이 전한 것인데요. 애플이 수정한 Gemini를 자사 Private Cloud Compute에 올려 돌려 보았지만 너무 느리게 동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클라우드 처리가 필요한 질의는 구글 클라우드의 엔비디아 Blackwell B200 가속기로 나간다는 대목도 여기 있었습니다. 다만 애플의 공식 문서는 가속기를 "엔비디아 GPU"라고만 적었고 Blackwell이나 B200 같은 모델명은 쓰지 않았으니, 그 부분은 보도로 남겨 두는 것이 맞습니다. 애플 스스로는 확장의 이유를 자사 서버가 느렸다는 쪽이 아니라 "가장 부담이 큰 작업"의 수요로 설명합니다.
▸ 남은 공백은 숨긴 것이 아니라 표시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제가 이 사건에서 더 오래 생각한 대목은 계약 조건 쪽이 아닙니다. 애플은 자기 칩을 설계하고 자기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현금도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입니다. 그런 회사도 빌려 온 모델을 자기 서버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이 보도된 사정입니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의 마크 거먼 기자가 전한 조건에 따르면 애플이 쓰는 모델은 구글이 애플 전용으로 만든 1조 2,000억 파라미터 규모이고, 애플이 그때까지 클라우드에서 돌리던 자사 모델은 1,500억 파라미터였습니다. 여덟 배쯤 되는 크기지요. 연 10억 달러 남짓이라는 금액도 같은 보도에서 나왔는데, 두 회사 모두 확인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새 Siri가 당초 봄의 iOS 26.4에 들어갈 것으로 보도됐다가 9월로 밀린 것도 이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지연의 원인이 그것 하나였다고 못 박을 근거는 없습니다.
외부 모델을 우리 인프라 안에 두겠다는 계획은 보통 라이선스 협상에서 막힐 것이라고 예상하는데요. 애플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그 앞에 응답 속도와 가속기 수급이 먼저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금 하드웨어 기반 기밀 컴퓨팅과 증명 체계가 메우고 있습니다. 애플이 이것을 문서와 원장과 바운티까지 붙여서 내놓았으니, 앞으로 이 형태를 요구 조건으로 들고 오는 고객이 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남았을까요? 애플이 공개하지 않은 것은 라우팅의 존재가 아니라 그 세부입니다. 요청의 어느 정도가 어디로 가는지는 밝히지 않았고, "가장 부담이 큰 작업"이라는 질적 구분만 적었습니다. 지금 제가 던진 질문 하나가 기기에서 끝났는지, 애플 데이터센터로 갔는지, 구글 클라우드의 가속기까지 갔는지는 화면에 표시되지 않습니다. 보존에 대해서는 애플의 답이 있어요. 2024년 PCC 문서가 응답을 돌려준 뒤 데이터를 삭제하며 로깅이나 디버깅 목적으로도 남기지 않는다고 못 박아 두었고, 6월 문서는 구글 클라우드로 확장된 PCC도 같은 보안 모델을 유지한다고 적었습니다. 다만 그 약속이 제 요청 하나에 대해 지켜졌는지 확인할 경로는 원장과 바이너리 쪽이지 제 화면 쪽이 아닙니다. 사용자나 조직이 받아 볼 수 있는 감사 로그도 아직 문장으로 나와 있지 않고요.
이 글이 Gemini 기반 Siri를 쓰지 말자는 결론은 아닙니다. 회사에서 외부 모델 도입을 검토할 때 표에 칸이 몇 개 늘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가까워요. 추론이 어느 사업자의 하드웨어에서 도는지, 그 하드웨어의 기밀 컴퓨팅이 켜져 있고 그 증명을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지, 요청 단위로 처리 위치를 확인할 경로가 있는지, 입력과 출력이 며칠 보존되는지, 학습 제외 조건이 계약서에 문장으로 있는지, 감사 로그를 우리가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나라별로 기능이 다르게 켜지는지. 애플은 이 중 하드웨어와 증명, 그리고 나라별 가용성에 관한 칸은 이례적으로 자세히 공개했고, 보존에 대해서는 보존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비어 있는 것은 요청 단위로 처리 위치를 확인할 경로와 감사 로그입니다. 그럼에도 우린 다음 달에 한국어가 열리면 그 Siri에게 일정을 묻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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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애플 파크(쿠퍼티노) — Wikimedia Commons, Daniel L. 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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