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스를 두는 기계가 유럽의 궁정을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터번을 쓴 상반신 인형이 커다란 캐비닛 위에 놓인 체스판을 앞에 두고 앉아 있고, 사람이 맞은편에서 한 수를 두면 인형이 팔을 들어 응수했습니다. 헝가리의 발명가인 볼프강 폰 켐펠렌이 1770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앞에서 처음 공개한 자동인형인데요. 1783년부터는 요제프 2세의 지시로 2년에 걸쳐 유럽을 순회했고, 파리에서는 당시 미국 공사였던 벤저민 프랭클린과 마주 앉았다고 전해집니다. 캐비닛의 문을 어느 쪽으로 열어도 톱니와 지렛대만 보였습니다.
안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끄러지는 의자에 앉은 체스 명인이 아래에서 레버로 인형의 팔을 조작했는데요. 어느 문이 열리든 몸을 옮겨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캐비닛이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이 인형의 이름이 터크(Turk)였습니다. 그리고 2005년 말, 아마존이 새 서비스를 내놓으며 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미케니컬 터크(Mechanical Turk). 컴퓨터는 못 하고 사람은 쉽게 하는 잔일을 인터넷 너머의 사람들에게 과제당 몇 센트씩 주고 맡기는 시장이었습니다. 사기극의 이름을 자기 상품에 붙인 셈인데요.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이 서비스를 "인공 인공지능(artificial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고 불렀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팔았습니다.
아마존이 그 서비스를 오는 9월 30일에 종료합니다. 현지 시각 8월 25일에 밝혔고, 자사의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내부적으로 평가한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21년입니다. 신호는 이미 있었는데요. 7월 30일부터 신규 고객 접수를 닫았고, AWS는 그때 기존 고객은 정상적으로 계속 쓸 수 있고, 보안과 가용성에 대한 투자는 이어가되 신규 기능을 도입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규모가 작았던 서비스는 아닙니다. 아마존 자체 문서를 기준으로 최대 50만 명 이상의 작업자가 190개국에서 이 플랫폼을 거쳐 갔습니다. 작업 단위의 공식 명칭은 HIT(Human Intelligence Task)였습니다. 사람의 지능이 필요한 과제. 이름부터 정직했죠.
그리고 이 플랫폼 위에서 만들어진 것 중에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의 조상이 있습니다. ImageNet입니다. 페이페이 리 교수가 2007년 프린스턴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요. 2년 6개월에 걸쳐 167개국 약 5만 명의 작업자를 동원해 1,400만 장이 넘는 이미지에 라벨을 붙였습니다. 리는 당시 이것이 미케니컬 터크의 최대 단일 프로젝트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2012년 AlexNet이 이 데이터로 딥러닝 시대를 열었습니다. 지금의 AI는 5만 명이 손으로 붙인 라벨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손에 얼마가 지급됐을까요? 2018년 CHI 학회에 발표된 실측 연구에서 미케니컬 터크 작업자의 시간당 중위 임금은 약 2달러였습니다. 당시 미국 연방 최저임금인 시간당 7.25달러를 넘긴 작업자는 4%였습니다. 과제를 찾아다닌 시간이나 제출했다가 거부당한 작업처럼 보수가 발생하지 않는 시간까지 포함해 계산한 값입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값싼 인간 노동이 AI를 학습시켰고, 이제 AI가 그 노동을 대체해서 플랫폼이 닫힌다. 그런데 저는 순서가 반대라고 봅니다.
▸ 상자 안의 사람이 자기 안에 기계를 넣었습니다
2023년 6월, 스위스 로잔공대(EPFL)의 연구진이 논문 한 편을 냈습니다. 제목이 「Artificial Artificial Artificial Intelligence」입니다. 베조스의 표현에 인공을 하나 더 붙인 것이죠. 이들은 기존 문헌에 있던 초록 요약 과제를 미케니컬 터크에서 다시 돌리고, 키 입력 패턴 탐지와 합성 텍스트 분류를 함께 써서 작업자들이 무엇으로 답을 만들었는지 추정했습니다. 결과는 작업자의 33~46%가 LLM을 사용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단일 과제를 대상으로 한 추정치이니 플랫폼 전체의 비율로 확대해 읽으면 안 되는데요.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상자 안의 사람이, 자기 안에 다시 기계를 넣은 것입니다.
이 대목이 이 플랫폼의 사망 원인입니다. 미케니컬 터크가 판 것은 노동력이 아니었습니다.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판단을 사람이 대신 해준다는 보증, 즉 상자 안에 사람이 있다는 증명이었습니다. 라벨이 필요한 쪽이 돈을 낸 이유는 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계가 그 판단을 못 해서였으니까요. 그런데 안에 있는 사람이 기계를 쓰기 시작하면, 상자는 여전히 인간의 판단을 파는데 그것이 인간의 판단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값이 2달러여도 살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 시급 2달러에서 85달러로 : 올라간 것은 임금이 아니라 검증의 값입니다
작업자들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값이 올랐습니다.
미케니컬 터크에서 빠져나간 수요는 Scale AI, Mercor, Prolific 같은 회사들이 받았습니다. 이쪽의 가격 구조는 완전히 다른데요. 보도를 종합하면 Mercor의 전문가 평균 시급은 85달러 선이고, 시니어 전문가는 200달러를 넘습니다. Surge AI는 최상위 전문가에게 50~200달러를 지급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시간당 2달러에서 85달러입니다. 40배가 넘죠.
무엇의 값이 40배가 된 걸까요? 노동의 난이도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의료 기록이나 법률 문서를 다루는 주석이 상식 수준의 라벨링보다 어렵기는 하지만, 사람이 같은 시간에 내리는 판단의 값이 40배가 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올라간 것은 검증의 값입니다. 이 사람이 실제로 그 분야를 아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이 답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보증하는 값이죠. Mercor의 연환산 매출이 2026년 6월 기준으로 약 20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보도됐는데요. 이 회사가 파는 것은 라벨링 용량이 아니라 심사입니다.
물론 이 사건을 AI 서사로만 읽으면 과장이 됩니다. 미케니컬 터크는 오래 쇠락해 온 플랫폼이었습니다. 아마존은 2018년부터 이 서비스를 데이터 주석 도구로 재배치했고, 이후 눈에 띄는 개선 없이 유지만 해왔습니다. 경쟁 서비스들이 더 나은 단가로 작업자를 데려간 것도 사실이고, 이번 종료는 그 결과를 정리한 사업 판단에 가깝습니다. 아마존은 폐쇄의 구체적 사유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위에 적은 전문가 시급이나 매출도 대부분 업체 발표와 2차 보도에 기반한 숫자라 확정된 실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난 20년간 AI의 하부구조가 무엇이었는지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 사람의 수를 세는 방식으로는 값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국에도 같은 질문이 옵니다. 국내 데이터 라벨링 시장의 1위인 크라우드웍스는 수십만 명 규모의 라벨러 풀을 강점으로 내세워 왔습니다. 그런데 추론형 모델이 등장한 뒤로 수요가 옮겨간 곳은 라벨의 양이 아니라 복합적인 추론이 담긴 고품질 데이터입니다. 과기정통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 올해 4월 착수한 추론용 학습 데이터 구축 사업을 보면 방향이 분명한데요. 총 66억 원 규모로 10개 과제를 뽑았고, 제조 설비의 이상 원인 추론이나 로봇 작업 실패의 복구 행동처럼 해당 분야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데이터가 대부분입니다. 등록된 인원의 규모는 이제 자산의 크기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중 누가 무엇을 아는지 증명할 수 있는지가 값이 됩니다.
1770년의 터크는 기계인 척하는 인간이었습니다. 2005년의 터크는 그 사실을 자백하고 팔았던 시장이었습니다. 2023년의 터크는 인간인 척하는 기계였고, 그래서 2026년에 닫힙니다. 우리가 앞으로 사게 될 것은 판단 그 자체보다 그 판단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에 대한 보증일 텐데요. 그것을 무엇으로 확인할지는 앞으로도 계속 얘기가 나오겠죠. 다만 5만 명이든 50만 명이든, 사람의 수를 세는 방식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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