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리바바가 10월 13일 신제품 발표회에서 Qwen 글래스 N1을 중국 시장에 내놨습니다. 기본형이 2,899위안부터, 상위 모델인 N1 Pro가 3,399위안부터인데요. 카메라는 두 모델 다 5,000만 화소로 같습니다. 둘을 가르는 것으로 알리바바가 앞세운 건 세 가지예요. 시선 추적, 건강 센서, 그리고 홍채 인증 결제.
지문도 있고 얼굴도 있는데 왜 하필 홍채일까요. 게다가 홍채 인식은 10년 전에 이미 스마트폰에 들어왔다가 조용히 사라진 기술입니다. 그게 왜 지금 안경에서 다시 나올까요. 답은 인식 알고리즘보다 빛 쪽에 있습니다.
거울을 한번 들여다보세요. 여러분의 홍채가 무슨 색으로 보이나요. 한국 사람 대부분은 짙은 갈색이고, 그 안에서 무늬를 읽어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홍채에는 지문만큼이나 복잡한 구조가 있습니다. 크립트(crypt)라고 부르는 작은 구멍들, 방사형 주름, 섬유 다발이 사람마다 다르게 얽혀 있어요. 안 보일 뿐이죠.
가리고 있는 것은 멜라닌입니다. 멜라닌은 가시광선 영역에서 빛을 강하게 흡수합니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표면의 색만 남고 그 아래 구조는 묻혀 버립니다. 그런데, 파장이 700나노미터를 넘어서면서 멜라닌의 흡수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근적외선에서는 멜라닌이 투명해지는 셈이죠. 색이 빠지고 무늬만 남습니다. 홍채 인식 장치가 사실상 모두 적외선 LED를 달고 700~900나노미터 대역으로 눈을 찍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눈 색이 짙을수록 적외선이 더 필요합니다.
무늬를 숫자로 바꾸는 방법도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1990년대에 존 더그먼(John Daugman)이 제안한 방식이 지금도 상용 홍채 인식의 바탕인데요. 이미지에 Gabor 필터를 씌워 각 지점의 위상만 2비트씩 뽑아내면 2,048비트, 그러니까 256바이트짜리 코드가 나옵니다. 밝기나 대비가 아니라 위상만 쓰는 게 핵심입니다. 조명 세기가 바뀌어도, 카메라 게인이 달라져도 같은 코드가 나오거든요. 비교는 두 코드의 비트가 몇 개나 어긋나는지 세는 것으로 끝납니다. 서로 다른 사람의 홍채끼리는 각 비트가 0일 확률과 1일 확률이 반반이라 절반쯤 어긋납니다. 같은 눈이면 그보다 훨씬 적게 어긋나고요. 눈꺼풀이나 속눈썹에 가린 자리는 마스크로 빼고 양쪽 다 멀쩡한 비트만 셉니다. 판정 문턱은 대개 0.26에서 0.32 사이에 두는데, 반사와 잡음 때문에 비트 넷 중 하나가 어긋나도 같은 눈으로 본다는 뜻이죠. 비교할 게 256바이트뿐이라 대조할 대상이 수천만 건이어도 금방 끝납니다.
그러니 어려운 쪽은 계산이 아닙니다. 촬영입니다.
삼성이 2016년 갤럭시 노트7에 홍채 인식을 넣었던 걸 기억하시나요. 상단 베젤에 전용 적외선 발광부와 센서를 따로 넣어야 했고, 사용자는 폰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려 화면 속 가이드에 두 눈을 맞춰야 했습니다. 몇 세대를 더 이어가다 2019년 갤럭시 S10에서 사라졌습니다. 당시 보도들은 베젤 공간과 화면 내장 지문센서의 성숙을 이유로 들었는데, 삼성이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아닙니다. 다만 느리다거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는 평이 리뷰에서 나왔던 건 사실이죠.
안경에는 그 문제가 애초에 없습니다. 시선 추적을 하려면 어차피 근적외선 LED로 각막에 작은 반사점을 만들고, 눈을 향한 카메라로 그 점과 동공 중심의 위치 관계를 읽어야 하거든요. 눈을 보는 카메라, 근적외선 조명, 고정된 거리와 정렬. 홍채를 찍는 데 필요한 조건이 시선을 좇는 데 필요한 조건과 거의 그대로 겹칩니다. 물론 같지는 않아요. 시선은 꽤 거친 영상으로도 좇을 수 있지만, 홍채를 인증에 쓰려면 그 지름이 150픽셀 안팎은 나와야 합니다. 그래도 폰에서는 베젤을 깎아 가며 따로 마련해야 했던 것이 안경에서는 이미 거기 있는 셈이죠. N1 Pro가 시선 추적과 홍채 결제를 한 모델에 함께 넣은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알리바바가 두 기능이 같은 센서를 쓴다고 밝힌 것은 아닙니다. 전제 조건이 겹친다는 얘기죠.)
그런데, 조건이 겹친다는 말은 결제를 승인하는 자리와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기록하는 자리가 같아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제 기록은 무엇을 샀는지 말해 줍니다. 시선 기록은 무엇을 사지 않았는지까지 말해 주죠. 매대 앞에서 몇 초를 멈췄는지, 가격표를 몇 번 다시 봤는지, 집었다가 내려놓은 물건이 무엇인지. 실제로 그렇게 쓰인다는 예측은 아닙니다. 다만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회사이고, 이 안경의 기능 목록에 쇼핑과 결제가 들어 있고, N1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리가 9월 상하이 번드 서밋의 AI 결제 전시 구역이었다는 사실은 같이 놓고 볼 만합니다. 그때는 본체를 가려 둔 채였고, 사양이 공개된 건 그 뒤 알리바바 윈치(Apsara) 컨퍼런스에서였죠.
오인식률이 100만분의 1 미만이라는 수치도 돌아다니는데, 출시 전 프리뷰 단계에서 보도된 숫자이고 독립적으로 검증된 적은 없습니다. 숫자보다 궁금한 건 다른 쪽이에요. 지문은 유리컵에 남기고 오지만 홍채는 몸 밖으로 새지 않는다는 것이 그동안 홍채 인증의 미덕이었는데요. 사실 그 믿음은 2017년에 한 번 깨졌습니다. 독일 CCC가 야간모드로 찍은 눈 사진을 출력하고 그 위에 콘택트렌즈를 얹어 갤럭시 S8의 홍채 잠금을 열었거든요. 그때는 그래도 남의 사진을 구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쓰고 다니는 안경 안쪽에 적외선 카메라가 들어앉고 나서도 그 말이 계속 맞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싶습니다.
커버 이미지: 사람의 홍채 접사 — Wikimedia Commons, Osmo Lund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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