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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들끼리 말을 섞기 시작했다 : A2A와 에이전트 프로토콜의 탄생

AI들끼리 말을 섞기 시작했다 : A2A와 에이전트 프로토콜의 탄생

1876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했을 때 세상에는 전화기가 딱 두 대뿐이었습니다. 벨의 전화기와, 그의 조수 토머스 왓슨의 전화기. 두 대를 연결하는 데에는 한 가닥의 전선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전화기가 열 대로 늘어나자 이야기는 금세 복잡해졌습니다. 모두가 서로 통화할 수 있게 하려면 45개의 전선이 필요했고, 100대면 4,950개가 필요했지요. 이 속도로 가다가는 전 세계가 전선으로 덮일 판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바로 전화 교환기표준화된 통신 프로토콜이었습니다. "번호만 누르면 누구에게나 연결된다"는 우리에게 당연한 경험의 뒤에는, 모든 전화기가 같은 규칙으로 신호를 주고받겠다는 거대한 약속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2025년의 AI 세계가 지금 이와 비슷한 지점에 서 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AI 에이전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이 에이전트들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는 아직 정돈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돈을 시도한 첫 번째 선언이 2025년에 나왔습니다. 구글이 공개한 A2A (Agent-to-Agent) 프로토콜이 바로 그것입니다.

▸ MCP와 A2A는 무엇이 다른가

지난해 앤트로픽이 공개한 MCP(Model Context Protocol)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프로토콜은 "AI가 외부 도구와 대화하는 표준"이었습니다. AI가 구글 캘린더, 슬랙, 깃허브 같은 외부 서비스에 접근할 때 공통으로 쓰는 규약이었지요. 비유하자면 전 세계 콘센트를 하나로 묶는 USB와 같은 역할입니다.

2025년에 구글이 내놓은 A2A는 한 단계 위입니다. "AI끼리 서로 말을 섞는 규약"입니다. 오픈(AI)가 만든 에이전트가 앤트로픽이 만든 에이전트에게 작업을 의뢰하고, 그 작업의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결과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통의 대화 양식이지요. 같은 회사의 에이전트끼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회사가 만든 에이전트끼리의 협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구체적인 장면을 그려봅니다. 여행 계획을 짠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이번 여름에 파리로 가족 여행 가고 싶어"라고 말하면, 여러분의 개인 비서 에이전트가 먼저 움직입니다. 이 비서는 항공권 예약에 특화된 다른 회사의 에이전트에게 메시지를 보내 "7월 5일 출발, 서울에서 파리, 4인 가족"이라 조건을 전달합니다. 항공권 에이전트는 후보를 찾아 답변을 보냅니다. 비서는 이어서 호텔 예약 에이전트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냅니다. 세 에이전트가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협업하는 동안, 여러분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A2A가 그리는 그림입니다. 한 가지 모델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전문 에이전트들이 프로토콜을 통해 협업하는 생태계입니다.

▸ 왜 구글이 먼저 내놓았는가

흥미로운 점은, 이 표준 제안을 내놓은 곳이 오픈(AI)가 아니라 구글이라는 사실입니다. MCP가 앤트로픽에서, A2A가 구글에서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AI 시대의 표준을 둘러싼 경쟁이 제품의 경쟁이 아니라 인프라의 경쟁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구글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 자리를 선점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첫째, 구글 워크스페이스(Gmail, Docs, Calendar, Drive)라는 거대한 기존 생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A2A가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이 생태계 안에서 일하는 에이전트들이 자연스럽게 구글 플랫폼에 묶입니다. 둘째, 안드로이드라는 수십억 대의 단말을 통해 소비자 단에서의 에이전트 표준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오픈(AI)에게 뺏긴 '퍼스트 무버' 타이틀을 인프라 차원에서 되찾으려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챗봇 경쟁에서는 뒤처졌지만, 프로토콜 경쟁에서는 앞서자는 계산입니다.

▸ 표준 전쟁의 예고편

이 모든 이야기에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표준이라는 것은 한 번 자리 잡으면 막대한 네트워크 효과를 낳지만, 그 전까지는 여러 후보가 경쟁하며 시장이 조각납니다. 1980년대의 VHS와 베타맥스가 대표적이지요. 베타맥스가 기술적으로 우수했지만 VHS가 라이선스 정책을 공격적으로 열고 제조사들을 끌어들이면서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표준 전쟁에서 이기는 자는 반드시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장 많은 편을 모은 자입니다.

지금 AI 에이전트 프로토콜의 판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MCP: 앤트로픽이 주도하고, 오픈(AI)의 함수 호출(Function Calling)과 상호운용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둘째, A2A: 구글이 주도하고, 구글 자체 생태계와 결합해 진행 중입니다.

셋째, 각 회사의 폐쇄형 연결: 오픈(AI)의 어시스턴트 API,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토젠(AutoGen) 등 자사 플랫폼 안에서만 통하는 연결입니다.

이 셋이 각자의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이 2025년 말의 풍경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호환되는 방향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지만, 단기적으로는 꽤나 혼란스러운 시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한 회사가 모든 에이전트 프로토콜의 주인이 될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 보입니다. 1990년대 초기의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표준 여러 개가 경쟁하다가 사용자가 가장 많이 선택한 곳으로 수렴하는 경로가 유력합니다.

▸ 프로토콜의 무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봅시다. 프로토콜이 왜 중요한가. 우리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제품은 눈에 보이지만, 프로토콜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기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세상을 가장 크게 바꾼 것들은 제품이 아니라 프로토콜이었습니다.

1990년대 초,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가 HTTP와 HTML이라는 표준을 발표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웹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각 대학의 컴퓨터에는 수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었지만, 서로 통하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공통의 프로토콜이 깔린 순간, 누구나 브라우저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단순한 약속 하나가 인터넷 시대를 열었습니다.

MCP와 A2A는 AI 에이전트 세계의 HTTP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표준이 자리 잡으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협업이 가능해집니다. 개인 비서 에이전트가 회계 에이전트, 법률 에이전트, 의료 상담 에이전트와 자유롭게 소통하며 우리의 복잡한 일상을 대신 처리하는 세상 말입니다. 이것이 어느 해에 현실이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합니다.

▸ 한국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

한국의 많은 기업이 이미 AI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어떤 AI 모델을 쓸 것인가"의 선택에 머물러 있습니다. GPT를 쓸까, 클로드를 쓸까, 제미나이를 쓸까 하는 식이지요. 그런데 2025년 말의 업계 흐름은 이 질문을 넘어서 있습니다. "우리의 내부 시스템을 어떤 프로토콜로 AI에 개방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한 보험사가 AI 에이전트를 도입해 고객 상담 자동화를 시도한다고 합시다. 이 에이전트는 고객의 가입 현황을 조회하고, 청구 서류를 검토하고, 보상 한도를 계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보험사의 내부 시스템(CRM, 계약 관리, 결제, 심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접근을 어떤 방식으로 열어둘 것인가가 바로 프로토콜 선택의 문제입니다.

각 시스템마다 다른 방식으로 연결을 만든다면 관리 복잡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나중에 AI 벤더를 바꿀 때 모든 연결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반면 표준 프로토콜(MCP 혹은 A2A)을 채택하면, AI 모델을 갈아타더라도 연결 구조는 그대로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클라우드 네이티브'에서 '에이전트 네이티브'로 기업 IT 아키텍처가 이동하는 시점의 핵심 의사결정입니다.

▸ 에이전트 생태계의 공공재로서의 표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저는 프로토콜 경쟁의 승자가 누가 되든 결국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AI 에이전트들이 서로 말을 섞을 수 있는 세상과, 에이전트마다 높은 담장 안에 갇혀 있는 세상 사이의 차이는 우리 모두의 일상에 깊이 영향을 줍니다. 여행 예약 하나에 비서 에이전트, 항공권 에이전트, 호텔 에이전트가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는 "어느 회사의 에이전트를 쓸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면 각 에이전트가 자기 회사 생태계 안에서만 작동한다면, 우리는 매번 "이 일은 어느 에이전트에 맡겨야 하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 선택의 결과는 결국 표준을 만드는 기업들이 얼마나 개방적으로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닫힌 표준은 제국이 되지만, 열린 표준은 생태계가 됩니다. 인터넷이 열린 프로토콜 위에서 만개했던 역사를 AI 에이전트 세계가 그대로 반복할 수 있기를, 저는 조심스럽게 희망합니다.

AI가 스스로 똑똑해지는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습니다. AI들이 서로 연결되어 협업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전화기가 두 대에서 수십억 대로 확장되며 인류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던 것처럼, AI 에이전트들이 공통의 프로토콜로 연결되는 순간, 우리가 AI를 사용하는 방식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그 변화가 시작된 해가 2025년이라는 기록을, 아마 훗날 누군가가 다시 펼쳐보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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