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여정 — 튜링에서 ChatGPT까지
70년간의 축적이 오늘의 생성형 AI를 만들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인공지능' 용어 탄생
패턴 매칭 기반 대화 시스템
연구 자금 축소, AI 기피 시대
규칙 기반 AI의 부흥과 한계
전문가 시스템의 한계 도달
기계가 체스 챔피언을 이기다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압도적 우승
바둑에서 인간을 뛰어넘다
"Attention Is All You Need"
2개월 만에 1억 사용자 돌파
오픈소스 모델의 글로벌 충격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1950년,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제목은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이 논문에서 그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당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공상과학 소설에나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컴퓨터라는 기계가 겨우 수학 계산을 해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튜링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나의 실험을 제안합니다. 사람이 화면 너머의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 상대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생각한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튜링 테스트'입니다. 지금 우리가 ChatGPT와 나누는 대화를 떠올려 보세요. 튜링이 70여 년 전에 상상했던 장면이 현실이 된 셈입니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이 탄생하다
1956년, 미국 뉴햄프셔주 다트머스 대학에 젊은 과학자들이 모입니다.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클로드 섀넌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이 여름 워크숍에서 존 매카시가 처음으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낙관적이었습니다. "한 세대 안에 기계가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이후 초기 연구자들은 놀라운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1966년 MIT의 조셉 와이젠바움은 ELIZA라는 챗봇을 만들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심리 상담사처럼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물론 ELIZA는 실제로 대화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패턴 매칭이라는 단순한 기법을 사용한 것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ELIZA와 대화하며 진짜 상담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1969년에는 스스로 움직이며 환경을 인식하는 로봇 Shakey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기대와 좌절 — AI의 겨울이 찾아오다
하지만 낙관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연구자들이 약속했던 "인간 수준의 지능"은 쉽게 오지 않았고, 정부와 기업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 이어진 이 시기를 사람들은 '제1차 AI 겨울'이라고 부릅니다. 연구 자금은 대폭 축소되었고, AI라는 단어 자체가 학계에서 기피 대상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 잠시 봄이 찾아옵니다.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등장한 것입니다. 전문가 시스템은 특정 분야 전문가의 지식을 "만약 A이면 B를 하라"는 규칙으로 정리해 컴퓨터에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의료 진단, 광물 탐사 등에서 성과를 보이며 산업계의 관심을 끌었지만, 이 접근법도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을 규칙으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결국 1990년대 초, 제2차 AI 겨울이 찾아옵니다.
AI의 역사에서 이 겨울들은 매우 중요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반드시 실망으로 이어지며, 진정한 혁신은 묵묵한 연구의 축적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데이터로 배우는 기계 — 머신러닝의 등장
AI의 겨울 동안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은 과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을 탐구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AI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라"는 규칙을 사람이 직접 알려주는 방식이었다면, 새로운 접근법은 기계에게 수많은 데이터를 보여주고 스스로 패턴을 찾아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기계학습)'입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에게 고양이를 가르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고양이란 네 발이 있고, 수염이 있고, 꼬리가 있는 동물이야"라고 규칙을 알려주는 방식이 전통적 AI입니다. 반면 머신러닝은 수천 장의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고양이야"라고만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아이는, 아니 기계는, 스스로 고양이의 특징을 찾아냅니다.
1997년, 머신러닝의 위력을 세상에 알린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IBM의 컴퓨터 Deep Blue가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긴 것입니다. Deep Blue는 초당 2억 개의 체스 포지션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주었습니다.
딥러닝 혁명 — 기계가 보고, 듣기 시작하다
머신러닝의 한 갈래였던 '딥러닝(Deep Learning, 심층학습)'은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한 기술이었습니다. 인간의 뇌에서 뉴런(신경세포)이 연결되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모방한 '인공 신경망'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미 195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당시의 컴퓨터 성능과 데이터 양으로는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었습니다.
전환점은 2012년에 찾아왔습니다. 토론토 대학의 제프리 힌턴 교수 연구팀이 만든 AlexNet이라는 딥러닝 모델이 이미지 인식 대회 ImageNet에서 기존 방식을 압도적으로 이기며 우승한 것입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AI 연구의 판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깨어난 것과 같았습니다. 컴퓨터가 사진 속 사물을 인식하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016년에는 AI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AlphaGo가 바둑 세계 최강자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입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고 알려진, 체스와는 차원이 다른 게임이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바둑에서 AI가 인간을 이기려면 최소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AlphaGo는 그 예측을 보기 좋게 깨뜨렸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이 대국을 지켜보며 AI의 가능성을 실감했습니다.
기계가 "만들기" 시작하다 — GPT와 생성형 AI
딥러닝이 "인식"의 혁명이었다면, 그다음 혁명은 "생성"이었습니다. 2017년, 구글 연구팀이 "Attention Is All You Need"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 논문에서 제안된 트랜스포머(Transformer)라는 구조가 오늘날 생성형 AI의 근간이 됩니다. 트랜스포머는 문장 속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효율적으로 파악하는 기술인데, 이 기술 덕분에 기계가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8년 OpenAI가 GPT-1을 출시하고, 2020년에는 1,750억 개의 파라미터(매개변수, 모델이 학습한 지식의 양을 나타내는 수치)를 가진 GPT-3가 등장하면서 대규모 언어 모델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GPT-3는 질문에 답하고, 시를 쓰고, 코드를 작성하고, 번역을 해내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 11월 30일, ChatGPT가 출시됩니다. 이 순간은 AI 역사의 분수령이었습니다. ChatGPT는 출시 5일 만에 100만 사용자, 불과 2개월 만에 1억 사용자를 돌파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 1억 사용자에 도달하는 데 2년 반, 틱톡이 9개월 걸린 것과 비교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확산된 서비스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25년 12월 기준, ChatGPT의 주간 활성 사용자는 9억 명을 넘어섰습니다.
ChatGPT 이후 AI의 발전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2023년에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시에 이해하는 GPT-4가 나왔고, 구글의 Gemini, 앤쏘로픽의 Claude 같은 경쟁 모델들이 잇따라 등장했습니다. 2025년 1월에는 중국의 DeepSeek R1이 오픈소스 모델로서 미국 앱스토어 1위에 오르며 글로벌 AI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고, 이 소식에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약 6,000억 달러 하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70년의 축적이 만든 오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AI는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1950년 튜링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다트머스 회의의 꿈, 두 번의 혹독한 겨울, 머신러닝의 조용한 진화, 딥러닝의 극적인 부활, 그리고 트랜스포머의 발명까지,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연구자들이 쌓아올린 지식과 실패의 축적이 있었습니다.
AI의 여정은 직선이 아니라 파도와 같았습니다. 높은 기대의 물결이 밀려왔다가 실망의 썰물이 빠져나가고, 다시 더 높은 파도가 밀려오는 과정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이전보다 더 높은 곳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생성형 AI의 물결은 분명 가장 높은 파도입니다. 하지만 이 파도 역시 70년간의 축적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70년의 축적 위에 세워진 생성형 AI는 대체 무엇이 다르기에, 이토록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걸까요? 다음 장에서 생성형 AI가 왜 지금 이렇게 중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